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26) /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
세금 부담에 목장운영 한계에도 “매각 절대 안 돼! 후손 물려줄 것”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사)제주생태관광협회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사)제주생태관광협회 그리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15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을 탐방했다. ⓒ제주의소리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사)제주생태관광협회 그리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15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을 탐방했다. ⓒ제주의소리

수입에 버금가는 세금 때문에 목장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후손에게 물려줄 마을공동체 자산을 남기겠다는 목표로 살길을 찾아가고 있는 조합이 있다. 

목장운영의 어려움 속에서도 매각 의사를 보이지 않고 되려 정관에 ‘목장은 후손에 물려줄 유산으로서 처분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조합 이야기다.

목장은 아름다운 청정 제주의 자연을 그대로 보전, 도민과 관광객에게 그림같은 풍광을 선물하고 재생에너지 생산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마을공동목장들은 세금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목장을 활용하기 위한 규제 완화·해제나 지원책 없이 드넓은 땅에 대한 세금만 부과하니 목장을 가진 조합들은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목장부지 일부를 매각하기도 한다. 

목장부지를 매각할 경우 대부분 눈독 들이고 있던 개발업자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문제다. 목장은 몇십만, 몇백만 평에 달할 정도의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어 골프장을 짓기에 제격이다.

또 웅장한 한라산의 품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경관을 독차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리조트가 들어서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한라산 허리춤에 만들어진 골프장과 리조트 등은 대부분 ‘마을공동목장’이었다고 보면 된다. 목장은 활용가치가 떨어진 대신 환경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사)제주생태관광협회 그리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15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을 탐방했다.

가시리협업목장 부지와 주변 오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오상문 가시리협업목장 이사. ⓒ제주의소리
가시리협업목장 부지와 주변 오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오상문 가시리협업목장 이사. ⓒ제주의소리
가시리협업목장 부지와 주변 오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오상문 가시리협업목장 이사.  ⓒ제주의소리
가시리협업목장 부지와 주변 오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오상문 가시리협업목장 이사. ⓒ제주의소리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탐방은 오상문 가시리협업목장 이사의 설명을 따라 목장 일대를 둘러보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가시리협업목장은 봄철 유채꽃과 벚꽃이 어우러져 상춘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녹산로’ 일대 약 826.5헥타르(약 250만 평)에 달하는 드넓은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정석비행장과 제동목장이, 동쪽으로는 성읍목장이 있다.

가시리목장은 과거 임금에게 바친 진상용 1등 품질의 말을 골라 임시로 길렀던 번널오름 주변 ‘갑마장’을 중심으로 설치, 일제강점기인 1937년 제주도사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일제는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소를 제주시 한림까지 가져오도록 한 뒤 군수물자로 활용했다.

가시리목장은 1948년 제주4.3 당시에는 마을이 피해를 겪으며 조합원 명부가 소실되기도 했다. 이후 목장용지를 둘러싼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주민 간 소송이 불거져 조합은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번널오름을 매각했다.

소송을 거친 목장부지는 1973년 가시리협업목장조합으로 소유권 보존 등기, 1978년 가시리새마을회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됐다. 목장은 2010년대부터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사업자에 목장용지 일부를 임대하기 시작했다. 

목장을 임대, 설치하게 된 풍력발전단지는 유채꽃이 어우러진 흔치 않은 풍경을 선사, 방문객이 꾸준히 찾는 명소가 됐다. 또 봄철 진행하는 유채꽃 축제 때는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기도 한다.

가시리목장은 경관 작물인 유채꽃을 심기 위해 ‘초지 전용’을 해야 한다. 현행법상 초지는 목초 재배 등 목축업 관련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이사는 이런 이유로 축제가 끝난 뒤 유채꽃을 갈아엎어 목초를 심어 복구하는 등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조합이 유채꽃을 심고 길렀다가 갈아엎으면서까지 축제를 개최하는 이유는 목축 방식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축산 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소나 말을 방목하지 않게 되면서 목장의 활용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소나 말을 키우지 않는 목장을 지키고 활용하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 중 하나다.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를 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바람이 잘 불고, 해를 가리는 방해시설이 없는 넓은 땅은 재생에너지 시설이 들어서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가시리목장에도 제주에너지공사 국산화 풍력발전단지를 비롯해 민간 기업의 풍력발전 시설이 들어섰다. 

유채꽃과 어우러진 가시리협업목장의 풍력발전단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기 위한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제주의소리
유채꽃과 어우러진 가시리협업목장의 풍력발전단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기 위한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제주의소리
가시리협업목장에 조성된 초지. ⓒ제주의소리
가시리협업목장에 조성된 초지. ⓒ제주의소리

오 이사는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통해 땅을 활용하고 있는 가시리목장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비슷한 위기에 처한 제주지역 목장들이 견학을 오기도 한다고 했다.

끊이지 않는 방문객, 매번 성황리에 진행되는 축제, 풍력발전단지 임대료 등 벌어들이는 수입이 상당할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수입에 버금가는 세금이 부과되는 데다 축제와 방문객 수입이 사실상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유채꽃 축제 역시 처음에는 조합과 마을회 차원에서 주최하다가 결국 행정에 모든 권한을 넘겼다. 보조금 지원을 받아 축제를 열어봐야 적자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조합은 축제 때 마을 부녀회 차원의 부스를 열어 활동비 정도의 수입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목장을 활용하기 위해 설치한 과거 ‘갑마장 길’을 비롯해 마을사업으로 유채꽃플라자, 조랑말체험공원 등을 운영 중이다. 

가시리목장에는 조선시대 제주도 목장사와 목축문화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잣성의 흔적도 남아있다. 거무튀튀한 제주의 돌담을 기다랗게 쌓아 올린 돌 울타리인 잣성은 제주 중산간 목초지의 목마장 경계에 소나 말이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쌓았던 돌담이다.

제주도에만 남아있는, 단일 유적으로는 가장 긴 선형 유적인 잣성은 조선시대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설치됐던 국영목마장의 실체를 입증하는 역사유적이자 제주도 전통목축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된다.

또 일제강점기 마을공동목장이 설립되던 당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간장’도 남아있다. 목장 동쪽 성읍목장과의 경계에는 사람 키높이 정도의 돌담이 쌓아져 있다. 각 목장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이름도 ‘사이 간(間)’을 활용한 간장이다.

가시리협업목장 동쪽 성읍목장과 맞닿은 지점엔 경계를 구분하는 '간장'이 설치됐다. 설치 시점은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제주의소리
가시리협업목장 동쪽 성읍목장과 맞닿은 지점엔 경계를 구분하는 '간장'이 설치됐다. 설치 시점은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제주의소리
가시리협업목장은 갑마장길과 잣성길을 운영하고 있다. 잣성은 제주지역의 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국영목장인 10소장의 경계를 표시한 돌담이다. 잣성은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큰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 사이에는 중잣성이 남아있다. 잣성은 제주의 목축문화를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조선시대 탐라순력도 중 하나인 산장구마에 가시리의 녹산장을 가장 주요한 제주마 목장으로 그려 놓았을만큼 가시리의 목마장은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큰사슴이와 따라비오름 사이 잣성길은 잣성을 따라 너른 마을목장을 보면서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잘 정비돼 있다. ⓒ제주의소리
가시리협업목장은 갑마장길과 잣성길을 운영하고 있다. 잣성은 제주지역의 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국영목장인 10소장의 경계를 표시한 돌담이다. 잣성은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큰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 사이에는 중잣성이 남아있다. 잣성은 제주의 목축문화를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조선시대 탐라순력도 중 하나인 산장구마에 가시리의 녹산장을 가장 주요한 제주마 목장으로 그려 놓았을만큼 가시리의 목마장은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큰사슴이와 따라비오름 사이 잣성길은 잣성을 따라 너른 마을목장을 보면서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잘 정비돼 있다. ⓒ제주의소리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과거 목축 환경의 흔적과 현재 활용 중인 모습까지 제주도 목축 문화의 산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가시리목장은 여러 운영상 위기에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 

조합은 ‘기본재산은 어떠한 경우라도 처분할 수가 없고, 일반 재산은 이사회 결의를 거쳐 총회 승인 후 처분할 수 있다’는 등 쉽게 목장을 매각할 수 없는 장치를 마련, 지켜나가고 있다.

가시리협업목장조합은 1978년까지 가시리에 주소를 두고 살았던 리민이나 그 자손, 현재 가시리에 주소를 두고 거주하는 세대주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한다. 조합원이더라도 가시리 외 지역으로 이주할 경우 조합원 자격은 자동 상실된다. 다른 목장과 다르게 준조합원 제도도 운영 중이다. 

오 이사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은 안 했는데 이제는 세금이 가장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어 “제주지역 공동목장은 완전히 특수한 형태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데 그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의 공익성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세제 관련 지원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합은 목장을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마을의 재산, 총유재산 개념으로 보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마을공동체의 재산으로 운영,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사)제주생태관광협회 그리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15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을 탐방했다. ⓒ제주의소리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사)제주생태관광협회 그리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15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을 탐방했다. ⓒ제주의소리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15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을 탐방했다. ⓒ제주의소리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사)제주생태관광협회 그리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15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협업목장을 탐방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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