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국보법 재심 ‘무죄’ 확정
억울한 옥살이 52년 만에 명예회복

각종 고문과 허위자백에 간첩으로 내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양진(92) 어르신이 53년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며 명예를 회복했다.
17일 서울고등법원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은 김 어르신의 재심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법률대리인을 맡은 문성윤 변호사는 당시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기소와 재판의 위법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 어르신도 직접 법정에 출석해 한 맺힌 억울함을 쏟아냈다.
검찰도 간첩 조작을 스스로 인정하며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고령인 어르신의 상황을 고려해 결심 공판 당일 오후에 이례적으로 선고 공판을 열었다.
결과는 ‘무죄’였다. 재판부는 수사는 물론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단까지 모두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으로 이뤄졌다며 재심 청구인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재판부는 “인생 황금기에 장기간 복역해 피고인(김양진 어르신)이 겪었을 좌절과 분노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예우를 다했다.
더불어 “북한과 체제 경쟁을 하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판결이 조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 출신인 김 어르신은 1936년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향했다. 1964년 제주로 돌아와 농사를 짓던 중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에서 활동한 강철순의 진술로 간첩으로 지목됐다.

1972년 공안당국은 일본에서 공장을 운영한 김 어르신의 매형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조작하고 공작금을 받았다며 반국가단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덮어씌웠다.
군부독재 정권인 박정희 정부 시절 내무부 치안국은 구타와 잠재우지 않기, 굶기기 등 말로는 다 못 할 모진 행위를 일삼으며 인권을 짓밟았다.
구속영장은 불법 연행을 한 후 3일 뒤에야 발부됐다. 체포와 감금 모두 불법이었다. 조사과정에서 교수형을 뜻하는 은어 ‘그네’를 태우겠다는 등 협박도 이어졌다.
당시 검찰은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얻어낸 허위자백과 조악한 증거를 내세워 이듬해인 1973년 김 어르신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의 구형은 사형, 1심 선고는 무기징역이었다.
항소심에서는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몰수 판결이 내려졌다. 공안당국에 연행된 1972년부터 가석방 된 1985년까지 독재정권의 희생양이 된 어르신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진실규명을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4년 4월 김 어르신의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의 역할도 컸다. 2022년 연구책임을 맡아 작성한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가 진실규명에 큰 도움이 됐다.
문성윤 변호사는 김 어르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2024년 6월 서울고법에 재심청구서를 접수했다. 이에 재판부는 그해 11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어 7개월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