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간첩조작사건] 수사과정서 불법구금, 고문, 가혹행위 확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국가 사과 및 재심 조치 권고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김양진 어르신이 지난해 7월 6일 제주시 오도롱복지회관에서 진행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 공안당국은 일본에 살다 온 김 어르신에게 모진 고문을 가해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김양진 어르신이 지난해 7월 6일 제주시 오도롱복지회관에서 진행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 공안당국은 일본에 살다 온 김 어르신에게 모진 고문을 가해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나는 전혀 간첩일 한 적 없습니다.”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술은 5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때는 극악무도한 간첩, 지금은 무고한 국민이다.

공안당국의 불법 구금과 고문, 가혹 행위 끝에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써 15년 형을 선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김양진(93) 어르신 이야기다.

[제주의소리]는 김양진 어르신의 억울한 사연(판사실 재판에 간첩미수 ‘사형’ 구형..1주일 잠 안 재우고 “했지? 예” 상황 끝)과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 착수(누명 쓴 억울한 50년 세월 “나는 전혀 간첩일 한 적 없습니다”) 등 보도를 꾸준히 이어왔다.

진실규명을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조사를 시작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이하 진화위)는 어르신이 겪은 ‘반공법 위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했다.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속절없이 흐른 50년 세월, 진화위는 국가가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불법구금, 고문·가혹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아가 피해자와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 회복을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조사결과 명백히 죄가 없으니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결정이다. 

진화위가 사건조사에 나서 지금의 결과를 내놓기까지는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지난 2022년 연구책임을 맡아 작성한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의 역할이 컸다. 진실규명 개시 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피해 사실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정리한 덕분이다.

아흔이 넘은 나이로 토해낸 억울함, “억울하다, 나는 죄가 없다.” 수백, 수천 번의 공허한 외침을 누군가 들어주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흘러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죄인이라는 낙인은 떨쳐낼 수 있게 됐다. 

독재 권력의 먹잇감으로 찍혀 만들어진 간첩이 된 건장한 40대 초반, 사랑하는 배우자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두고 붙잡혀 간 그는 50대 중반이 돼 나타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흔을 넘긴 노인이 된 지금에야 누명을 벗게 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김 어르신을 도운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 이사장은 지난 2022년, 어르신이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조사개시 결정이 있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김 어르신을 도운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 이사장은 지난 2022년, 어르신이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조사개시 결정이 있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김양진 어르신은 1936년쯤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살다가 1964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농사를 짓던 중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에서 활동한 강철순의 진술로 간첩으로 지목, 내무부 치안국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공안당국은 일본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김 어르신의 매형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조작하고 그로부터 공작금을 받았다며 반국가단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덮어씌웠다. 

1934년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30여 년 뒤인 1964년에 귀국한, 한국말도 잘 못 하는 어르신이 사람들을 포섭했다는 짜맞추기식 조서도 포함됐다. 

진화위 조사결과 내무부 치안국이 어르신을 적법한 영장 없이 불법으로 구금하고 조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를 가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실이 드러났다.

군부독재 정권인 박정희 정부 시절 내무부 치안국은 어르신을 조사하면서 구타와 잠재우지 않기, 굶기기 등 말로는 다 못 할 모진 행위를 일삼으며 인권을 짓밟았다.

조사에 따르면 치안국은 어르신을 굶긴 뒤 다른 피의자가 식사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너도 죄를 인정하면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회유하는 등 악질적이었다. 어르신은 교수형을 뜻하는 은어 ‘그네’를 태우겠다는 등 협박을 당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어르신은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1985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정치적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민간인을 간첩으로 몰아넣고 반공 분위기를 조성, 여론의 관심을 돌린 독재 정권의 희생양이 된 어르신이다. 

내무부 치안국은 1972년 8월 2일 피해자를 구속영장 없이 불법 연행한 후 같은 달 5일에서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발부받은 구속영장은 피해자를 연행하기 전 받아야 했던 사전 구속영장이었다.

허위자백과 함께 공안당국은 간첩이라는 증거로 어르신이 일본에서 가져온 흔해 빠진 ‘트란지스터 라디오’와 ‘리시버’ 각 1대를 제출했다.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얻어낸 허위자백, 조악한 증거만으로 검찰은 기소했고 법원은 유죄 판결했다. 정당성을 잃은 위법한 재판이었다. 

한편, 어르신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기도 하다. 14살쯤 일본 히로시마에 살 때 원자폭탄이 떨어져 어머니와 2명의 동생을 잃었다. 그 역시 피폭 후유증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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