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117) 2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20명 무죄

제주4.3 당시 부친께서 어떤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함을 당했는지 이제야 알게 된 아들이 법정에서 흐느꼈다. 억울함을 풀어내지 못한 채 이승을 떠난 부친 대신 흘린 통한의 눈물이었다.
8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2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2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직권재심 대상자들은 대부분 무장대에게 식량이나 기금 또는 군경 정보를 전달하는 등 무장대를 돕고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들이다.
이날 법정에서는 고(故) 김탁하의 장남 김광호씨가 출석해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오늘 재판에 출석해 처음 아버지의 죄(공소사실)를 제대로 듣게 됐다. 우리나라 탄생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누구를 탓하겠나”라고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고인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1949년 11월 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고인은 1948년 6월쯤 남로당에 가입해 당비를 납입한 혐의다.
또 이른바 ‘폭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군자금과 식량을 전달하고 삐라를 배포했으며, 북조선 총선거 투표용지에 날인하고 인민공화국 수립에 찬성하는 만세 시위를 벌였다는 등 혐의도 받았다.
김씨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4.3 당시 돌아가셨다. 오후 5시까지 내려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부모님은 내려오셨지만, 시계가 없던 할아버지는 시간에 늦어 발포 명령에 즉사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에야 휴대전화도 있고 시계도 많이 있으니 시간을 맞추겠지만, 당시 어떻게 5시라는 시각을 딱 맞출 수 있었겠나”라며 “또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께선 아예 못 오시고 아라동으로 올라 도망가셨고 나중에 사살당하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억울함을 고려해 검사도 무죄를 주장한만큼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시길 바란다”며 “판결문을 가지고 추석때 아버지 묘소를 찾아 명예를 회복했음을 고하겠다”고 무죄를 호소했다.
또 故문도훈의 아들인 문성홍 씨는 “부친께서 살아계셔서 이 자리에 나왔다면 공소사실이 틀렸다고 하셨을 것”이라며 “어릴 때 술을 마시던 부친께 들은 이야기와 공소사실은 너무나도 다르다”라고 말했다.
고인은 1948년 5월부터 8월쯤까지 남로당 당원을 모집하고 군경 정보를 확보해 제공한 혐의다. 식량과 자금을 무장대에 전달하고 북한 총선거에 호응했다는 등 혐의도 받는다. 이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만원을 선고받았다.
문씨는 “공직자였던 아버지는 제주시에서 직장을 다니며 당신의 부모님께 양식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군경은 이를 가지고 무장대에 식량을 제공했다며 상상도 못할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징역형이었기에 아버지는 공직에서 해임됐고 어려운 삶을 겪어야 했다”며 “억울한 죄가 없었다면 평온한 삶을 살며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재판에서 합동수행단은 다른 재심 사건과 마찬가지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검사는 “부당한 국가권력을 바로잡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며 “무고한 희생자의 실추된 명예가 회복되고 조금이나마 유족에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각 희생자와 생존수형인, 행방불명인, 유족 등 모두가 1948년부터 지금까지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고 이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법률상 명칭은 피고인이지만, 특별법상 희생자인 20명의 영령에 위로를 보낸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노 부장판사는 “지난 재판에서 어느 유족이 한 ‘오늘 법정에 아버지도 와 계실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부디 오늘 판결 선고가 희생자와 유족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54~5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0월29일)
문광호, 강창수, 양두칠, 부윤희, 송두준, 송두선, 강재수, 송두억, 강창우, 양상진, 고승현, 이봉우, 강창권, 정팽종, 고찬옥, 오용남, 오기혁, 강애생, 홍승표, 오재건, 문달화, 고이만, 박자근, 소임송, 이기유, 현순심, 윤군일, 강현국, 김창하, 김병열, 강성진, 김일순, 송옥현, 안두원, 윤대윤, 오진호, 이순열, 임창빈, 채애훈, 현태정, 고원, 문재열, 한상섭, 윤세선, 강상호, 김덕률, 오민주, 한중원, 홍성태, 강만수, 한진섭, 강정순, 박인순, 양태화, 임헌수, 오태익, 오태희, 이원삼, 고선, 김학수
56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강창규, 고기숙, 이달순, 오봉춘, 김명선, 전생금, 문두현, 김영숙, 김여화, 양상진, 강남주, 강길수, 윤동혁, 문종담, 김영찬, 허림, 김순선, 강선여, 김희익, 고승화, 전학종, 김치영, 이정인, 김태호, 이완배, 고난향, 김태경, 강중석, 부덕현(부영진), 전인하
1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양상진, 고승현, 문달화, 양병기, 김원체, 오두석, 문상호, 김태석, 전봉주, 김형택, 김팔부, 장인관, 이을생, 이평규, 이인순, 백문수, 백문옥, 강세규, 진원택, 김영욱
57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김묘생, 박생운, 김여선, 고영규, 김평후, 이창현, 양경하, 고정규, 정병오, 김선익, 김대규, 한만년, 좌중희, 고봉철, 김봉후, 김형인, 현채옥, 이승홍, 이군방, 문계현, 오병현, 윤공례, 이종주, 이종인, 정병하, 양을생, 김용승, 임성범, 진달근, 김영숙
18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한상섭, 한진섭, 김태중, 김원준, 박성택, 양귀, 강중하, 문혁하, 백인명, 오인백, 오병문, 임정길, 오태문, 김갑순, 강재반, 김용숙, 양석보, 김상두, 현창식, 김지담
19~2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영주, 강병순, 김승림, 고석부, 현필현, 김용문, 양봉언, 이운경, 박달천, 고태붕, 고승호, 박중원, 김태봉, 강순교, 양창주, 김묘현, 고기백, 고창현, 고두선, 문상림, 김시화, 문창석, 박윤옥, 김호선, 양원민, 오용범, 강대형, 김관진, 김용원, 이승조, 정남흥, 안재흥, 김기석, 임록협, 한명석, 양태옥, 김진호, 김경호, 박기출, 김하균
58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장암, 현봉추, 현진옥, 김공현, 김여량, 양영구, 고성봉, 현진, 임영호, 정명순, 강윤부, 김두천, 문자언, 안한봉, 안해봉, 고점필, 홍찬효, 현병익, 강근택, 강위보, 정관휘, 김택환, 이하윤, 강성희, 이상호, 강순현, 오치홍, 이경수, 김진주, 문수명
5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이기찬, 전영윤, 홍중보, 장도현, 김병화, 김군산, 고춘생, 김전호, 현기추, 송인현, 변만조, 고영문, 고일철, 김방하, 이복순, 김범진, 박화춘, 안임생, 김춘화
23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임동야, 이상봉, 현봉규, 현두평, 조재두, 정창옥, 고태규, 강석규, 강관주, 안창규, 김태인
장성근, 현철종, 김시보, 우성대, 강진희, 이봉휴, 고신순, 황승휴, 김창순
2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한석, 우정생, 정옥련, 문도훈, 김명국, 강원선, 강몽필, 송남규, 양기형, 오남곤, 김태우, 김완봉, 진생남, 고대호, 김봉우, 서인수, 고재철, 김진국, 김탁하, 문팽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