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받지 못하는 이방인] ➀ UN 난민협약 가입국, 그가 기댄 희망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20주년,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된 지 24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평화’와 ‘자유’의 이름 뒤 난민 심사 문턱까지 가지 못한 채 ‘불회부 결정’과 이름도 생소한 ‘T-2 비자’ 속에 갇힌 이들이 있다. 일할 권리도, 지원도 없이 난민도 불법체류자도 아닌 ‘숨만 쉬는 존재’로 살아가는 현실. [제주의소리]는 그 높은 벽과 법적 사각지대, 그리고 그 안에서 버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주가 벼랑 끝에 내몰린 난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묻는다. [편집자 글]


지난 17일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나오미센터에서 만난 아프리카 대륙 출신 에마뉴엘씨(가명). ⓒ제주의소리
지난 17일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나오미센터에서 만난 아프리카 대륙 출신 에마뉴엘씨(가명). ⓒ제주의소리

“창문도 없는 방에서 4개월을 살았습니다. 천장 등은 밤 10시 전까지 불이 꺼지는 법이 없었고, 바닥의 얇은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잘 수 있었죠. 햇빛은 보지 못한 채 매일 같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며 버텼습니다. 감옥과 다르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지난 2월 아프리카 대륙의 작은 나라 출신 에마뉴엘(가명·30대)씨가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곧장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지만, 법무부는 ‘사유가 충분치 않다’며 심사조차 허용하지 않는 ‘불회부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그는 4개월 넘게 공항 방문객들과 철저히 분리된 사무실에서 생활해야 했다.

한국은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협약은 전쟁이나 박해로 고국을 떠난 난민을 강제로 돌려보내지 말 것과, 최소한의 체류·생계·교육 권리를 보장할 것을 회원국에 요구한다. 하지만 공항에 발이 묶인 그의 현실은 협약이 약속한 보호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에마뉴엘씨는 분쟁 지역 국경 인근에서 태어났다. 자원이 풍부한 땅을 두고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무장단체는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

그는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2년 전 아버지와 남동생이 전쟁터로 끌려가면서, 집에는 어머니와 저만 남았다”고 말하던 그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긴 침묵에 빠졌다.

“연락이 아예 끊겨버린 아버지는 돌아가신 걸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이듯 흘러나왔다.

어머니와 둘만 남은 그는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들여오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향에서 들려온 소식은 그를 다시 한번 더 무너뜨렸다.

그는 “‘동생이 돌아오지 않는다’던 엄마로부터 얼마 뒤 강가에서 동생 시신을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나 또한 끌려가면 산 채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그때부터 집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가 제주를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에서 ‘제주에 가고 싶다’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를 듣게 된 것이다. 검색 끝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욱이 한국은 UN 난민협약 가입국이라는 점도 그에게는 희망적이었다.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도 잠시, 공항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난민 신청 배경을 하루 종일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은 “입국할 수 없다”였다. “90일 안에 이의신청할 수 있다”는 안내와 함께, “당신은 들어올 수 없고,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반복됐다고 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자살 충동이 들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털어놨다.

에마뉴엘씨는 “특히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은 문화적 차이가 컸기에 더 어려움이 많았다”며 “한국은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우리가 받은 대우는 예상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같은 공간에 있던 난민의 소개로 변호사를 만난 그는 비용을 지불하고 소송에 나섰다. 결국 1심에서 승소해 4개월 만에 공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법무부는 곧바로 항소했다.

제주 땅을 밟았을 때의 심경을 묻자, 그는 끝내 눈물을 훔치며 울먹였다.

“솔직히 기쁘진 않았다. 사업도 했고 돈도 있었지만, 전쟁이 모든 걸 앗아갔다. 풀려났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고 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에마뉴엘씨는 “한국 정부가 항소하는 걸 보면, 결국 우리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에마뉴엘씨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죽음을 피한 ‘자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 놓인 현실은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항소심이 끝난다 해도 다시 난민 신청 절차를 밟아야 하고, 정식 인정을 받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제주에서만 거주할 수 있는 제한적 신분증, 차별적 시선, 불안정한 법적 지위.

그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

“저에게 자유는 안전 속에서, 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무조건 하고 싶은 걸 다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가 ‘하지 말라’며 내 삶을 강제로 통제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한국에서 누리고 싶은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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