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받지 못하는 이방인] ③ 시민사회가 짊어진 마지막 안전망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20주년,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된 지 24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평화’와 ‘자유’의 이름 뒤 난민 심사 문턱까지 가지 못한 채 ‘불회부 결정’과 이름도 생소한 ‘T-2 비자’ 속에 갇힌 이들이 있다. 일할 권리도, 지원도 없이 난민도 불법체류자도 아닌 ‘숨만 쉬는 존재’로 살아가는 현실. [제주의소리]는 그 높은 벽과 법적 사각지대, 그리고 그 안에서 버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주가 벼랑 끝에 내몰린 난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묻는다. [편집자 글]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제주의소리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제주의소리

제주공항 입국 → 난민 신청 의사 표명 → 법무부의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수개월 소요) → 1심 난민 신청자 승소 → 난민 신청자 ‘T-2’ 비자 발급 후 제주공항 벗어남 → 법무부의 항소(수개월 소요) → 2심 난민 신청자 승소 → 난민 신청 → ‘G-1’ 비자 발급 후 심사

제주공항에서 난민들이 실제 겪는 현실적인 절차다.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한 난민 신청자들은 곧장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없다. 입국장에서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혀도 법무부는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결정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송(1심)에서 승소해야만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이후에도 법무부가 항소하면 다시 수개월간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2심에서 승소해야 비로소 난민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이 과정에서 신청자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바로 ‘T-2’ 비자다. 이는 출입국관리법 제13조에 따른 조건부 입국허가로, 정식 비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더라도 예외적으로 임시 체류만 허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비자에 대한 정보는 법무부 공식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T-2 비자는 심사 불회부 결정자 등 난민 지위도, 일반 체류 자격도 없는 상태에서 공항이나 시설에 머물며 단순히 ‘체류만 가능’한 자격을 뜻한다. 취업이나 사회보장 혜택은 전혀 주어지지 않아 흔히 “숨만 쉬는 비자”라고도 불린다.

전쟁과 내전, 정치적 박해, 성소수자 차별, 종교 박해를 피해 목숨을 걸고 한국에 도착했더라도, T-2 비자를 가진 동안에는 단 한 푼의 생계비 지원도 없다.

간신히 난민 심사 단계에 도달해 ‘G-1 비자’를 받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법무부에 1인당 월 43만원의 생계비 지원을 신청할 수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혜택을 받는 이들은 극히 일부다.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 나오미센터. ⓒ제주의소리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 나오미센터. ⓒ제주의소리

실제 2022년 기준 전체 난민 신청자 중 생계비 지원을 받은 비율은 1.2% 밖에 되지 않는다.

2024년 9월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국회의원실 주최 간담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난민 생계비 예산은 전년보다 20% 삭감돼 5억6809만원에 그쳤다. 이는 전국적으로 약 400명에게 3개월간 지급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평균 1만5000건 이상 접수되는 연간 난민 신청 규모와 비교하면 사실상 ‘보여주기식 예산’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제주에서는 국가의 지원 부재가 더욱 두드러진다.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한 난민 신청자들은 숙식과 의료, 긴급 돌봄 등 기본적인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아닌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 나오미센터를 찾고 있다. 올해만 해도 나오미센터는 난민 신청자 8명의 숙식을 수개월간 책임지며 생존을 떠안고 있다.

난민들이 머물 공간, 끼니와 진료, 통역까지 모두 나오미센터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난민 보호의 최후 안전망이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라는 사실은 본래 국가가 져야 할 책무가 고스란히 민간에 전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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