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120) 2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20명 무죄

대한민국 국군 전신인 국방경비대의 훈련을 돕기 위한 숙식을 제공했을 뿐인데 국가권력에 의해 누명을 뒤집어쓰고 형무소로 보내졌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니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개방된 형무소를 뒤로한 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긴 그 순간, 뒤에서 총탄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총탄에 맞고 고꾸라진 뒤 목포 앞바다에 버려졌다.

제주4.3 당시인 1949년 4월 내란방조죄와 법령 제19호 위반 등 혐의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끌려가 징역 2년형을 선고, 목포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된 고(故) 고한성의 사연이다.

잘못된 국가권력의 과오를 뒤늦게나마 바로잡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제주4.3 직권재심이 열린 제주지방법원. 발언에 나선 고인의 손자는 할아버지 사후 이야기를 전했다.

23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2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20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고인의 손자인 고동균 씨는 법정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목포형무소에 있었던 사람으로부터 조부의 사망 및 행방불명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증언을 들었다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고씨는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이후 행방불명된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으로부터 총살을 당한 것”이라며 “한국전쟁 당시 형무소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놓고 뒤에서 무자비하게 총쏴 학살한 뒤 목포 앞바다에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이야기는 집에가도 먹을 것이 없으니 형무소에 남아 있겠다고 한 강모씨로부터 들었다. 그분은 국가권력이 무서워 몇십 년간 입을 닫고 살다가 어느 순간에 말을 꺼냈다. 당신 할아버지는 행방불명된 게 아니라 7월 23일날 총살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고 밝혔다.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간 고씨는 “이 증언을 듣고 지금도 할아버지 제사를 이때 지내고 있다”며 “국가폭력에 의해 살인당한 것은 상당히 참혹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 재심을 통해 할아버지의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줘 고맙다”고 말했다.

고인은 1949년 4월 제주지방법원에서 내란방조 및 법령 제19호 위반 등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이후 행방불명됐다. 당시 폭도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무허가 집회를 열었다는 등 혐의를 뒤집어썼다.

이날 법률상 피고인인 4.3희생자 대부분은 무장대에 식량과 자금을 조달하거나 삐라를 살포하고 5.10 총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도로 통행을 방해하는 등 혐의를 받는다. 10대 중학생부터 30대 청년까지 대부분 젊은 청춘들이 죄를 증명할 증거 없이 붙잡혀 목숨을 잃었다.

합동수행단의 무죄 구형에 이어 변호인은 희생자들이 겪은 억울한 사연들을 간략히 설명한 뒤 무죄를 요청했다. 강제로 연행돼 재판을 받은 뒤 총살이나 옥사, 전쟁 중 행방불명 등으로 희생된 이들에게 명예를 회복할 선고를 내려달라는 것이다. 

변호인은 “10대부터 20~30대의 젊은 나이로 총살을 당하거나 옥사, 전쟁 중 행방불명됐다. 극심한 이념대립 속 희생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해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해달라”며 “또 75년 넘게 힘들게 살아온 유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유족들이 법정에서 한 발언들이 마음에 깊이 남는다며 판결 선고가 희생자와 유족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힌 뒤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57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김묘생, 박생운, 김여선, 고영규, 김평후, 이창현, 양경하, 고정규, 정병오, 김선익, 김대규, 한만년, 좌중희, 고봉철, 김봉후, 김형인, 현채옥, 이승홍, 이군방, 문계현, 오병현, 윤공례, 이종주, 이종인, 정병하, 양을생, 김용승, 임성범, 진달근, 김영숙

18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한상섭, 한진섭, 김태중, 김원준, 박성택, 양귀, 강중하, 문혁하, 백인명, 오인백, 오병문, 임정길, 오태문, 김갑순, 강재반, 김용숙, 양석보, 김상두, 현창식, 김지담

19~2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영주, 강병순, 김승림, 고석부, 현필현, 김용문, 양봉언, 이운경, 박달천, 고태붕, 고승호, 박중원, 김태봉, 강순교, 양창주, 김묘현, 고기백, 고창현, 고두선, 문상림, 김시화, 문창석, 박윤옥, 김호선, 양원민, 오용범, 강대형, 김관진, 김용원, 이승조, 정남흥, 안재흥, 김기석, 임록협, 한명석, 양태옥, 김진호, 김경호, 박기출, 김하균

58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장암, 현봉추, 현진옥, 김공현, 김여량, 양영구, 고성봉, 현진, 임영호, 정명순, 강윤부, 김두천, 문자언, 안한봉, 안해봉, 고점필, 홍찬효, 현병익, 강근택, 강위보, 정관휘, 김택환, 이하윤, 강성희, 이상호, 강순현, 오치홍, 이경수, 김진주, 문수명

5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이기찬, 전영윤, 홍중보, 장도현, 김병화, 김군산, 고춘생, 김전호, 현기추, 송인현, 변만조, 고영문, 고일철, 김방하, 이복순, 김범진, 박화춘, 안임생, 김춘화

23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임동야, 이상봉, 현봉규, 현두평, 조재두, 정창옥, 고태규, 강석규, 강관주, 안창규, 김태인
장성근, 현철종, 김시보, 우성대, 강진희, 이봉휴, 고신순, 황승휴, 김창순  

2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한석, 우정생, 정옥련, 문도훈, 김명국, 강원선, 강몽필, 송남규, 양기형, 오남곤, 김태우, 김완봉, 진생남, 고대호, 김봉우, 서인수, 고재철, 김진국, 김탁하, 문팽용

22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오도흠, 김병화, 부규방, 양동직, 문종옥, 오남숙, 오영호, 김종하, 김양선, 강인현, 고성학, 김두석, 고창잠, 고두옥, 양성수, 송만표, 강위옥, 양병오, 강순옥, 김태준

2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정택, 현봉석, 최운길, 강희진, 문성순, 홍성태, 김홍집, 강순열(이명 강순옥), 채수삼, 김덕수, 오동식, 김기식, 오기봉, 진영숙, 김두규, 고방전, 부덕삼, 안상숙, 오창서, 고군옥

2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9월23일)
김태규, 홍종봉, 박신원, 지문옥, 오태전, 김옥선, 홍중화, 오태순, 오태보, 김윤평, 김희관, 한형조, 정홍남, 강인식, 고한성, 좌우보, 김두만, 김성훈, 조원배, 안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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