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스라엘 야드바셈 기념관의 '의인의 길' 벤치마킹 필요

최근 4.3평화공원 조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교대 최호근교수께서 "제주4.3평화공원, 무엇을 어떻게 기념해야 할까?"라는 제하의 글을 제주의소리에 보내왔다. 최교수의 글은 4.3공원 조성 재검토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판단하여 3회로 나누어 연재한다(최교수는 고려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한후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막스베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2년부터 지금까지 부산교육대학교 초등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교수는 귀국후,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에 관한 다수의 논문 발표했다). 옥고를 보내주신 최교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편집자]

몇 해 전부터 나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들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다.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살펴볼 때마다,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그 사건들을 4·3과 비교해보곤 했다.

“아,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네.” “어,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는 없었는데.”

특히 3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자세히 살펴보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4·3이 생각 가운데 떠올랐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왜 제주에서는 학살이 일어나는 동안 죽음의 위협에 내몰린 주민을 구했던 의로운 사람들이 없었지?”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나 스웨덴 사람 라울 왈렌버그, 일본인 치우네 스기하라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왜 없었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우연히 <제주의 소리> 기사를 통해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몰랐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모슬포경찰서장 시절 학살을 일삼던 서북청년회 단원들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했고 성산포경찰서로 옮긴 뒤 벌어진 6.25전쟁 때에는 "예비검속자를 즉각 총살하라"는 군대의 명령까지도 거부함으로써 수많은 목숨을 구했던 문형순 서장.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무장대측과 협상을 벌였고, 초토화작전을 전개하라는 미군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으며 주민보호를 위해 애쓰다 결국 해임까지 당한 김익렬 연대장.

애꿎은 희생을 막기 위해 토벌대의 유도심문에 모르쇠로 일관함으로써 '몰라 구장'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남원면 신흥리의 김성홍 구장. 밀고의 악순환을 끊어 주민을 보호했던 장성순 경사.

연일 학살이 벌어지던 소개민 수용소에서 공포에 떨던 소개민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여주었던 강계봉 순경.

토벌대의 학살극으로부터 슬기롭게 주민들을 보호했던 김남원 민보단장과 조남수 목사.  

그리고 굶주림과 공포에 휩싸여 있는 소개민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먹을 것을 나눠 주었던 신례2리 주민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소중한 느낌이 든다. 왜일까?

서양 학자들과 만날 때 4·3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두 번 놀란다. 처음에는 한국에도 그런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 다음에는 인도주의적 입장에 서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한 이들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도대체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해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반유대주의가 가장 극성을 떨었던 폴란드에서도, 숨어있는 유대인들에게 물 한 바가지만 줘도 즉석에서 처형되었던 그 폴란드 땅에서도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애쓴 것을 모르냐고 할 때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 의인의 길
왜? 우리 민족이 그렇고 그런 민족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반인도적인 사건은 있었는데, 그것을 저지하려는 인도적 움직임이 없었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한 생명을 구한 사람은 온 세상을 구한 것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본래는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탈무드를 가지고 보면, 피신해온 신례1리 주민들에게 피할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해준 신례2리 주민들이야말로 세상을 구한 사람들이다. 그분들의 이름은 하나하나 거론하며 자랑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이름들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1953년, 나치 독일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세운 야드 바셈(Yad Vashem) 기념관 경내에는 “의인의 길”이란 것이 있다.

이 길 양편에는 “의의 나무”가 심겨져 있다. 이 길과 나무들은 모두 학살기간동안 아무런 조건 없이 유대인들을 도왔던 비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현재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로부터 그들의 목숨을 구했던 사람들을 추천받아 엄격하게 심사한 뒤 “열방의 의인”으로 추대하고, 그들에게 기념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야드 바셈은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외국의 모든 귀빈들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그 가운데서도 “의인의 길”은 모든 방문객이 우선적으로 찾는 곳이다.

▲ 오스카쉰들러의 나무
의인으로 인정받아 야드 바셈에서 기념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대단한 영웅들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2003년 현재 이곳에 그 이름이 안치되어 있는 1만 9,706명의 의인들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일은 조남수, 김남원, 김성홍이 했던 일보다 작고, 그들이 구한 목숨은 김익렬, 장성순, 강계봉이 구한 생명보다 적다.

문형순 서장을 놓고는 상당한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경우에도 우리는 그가 운신할 수 있었던 폭을 먼저 가늠해보아야 한다. 그는 제주에서 전권을 갖고 있던 제 1인자가 아니었다. 그의 위에는 학살을 명령하고 재촉하던 상관이 있었고, 그의 옆에는 또 다른 명령계통에 서서 학살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둘러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관할구역 내에서 일어난 학살의 책임을 모두 그에게 전가하는 것은 무리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손과 팔이 미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사람이다.

이스라엘 대법원에 의해 의인으로 추대된 수많은 사람들이 밝혔던 소감들보다 내 가슴에 더 깊이 남는 것은, “나는 주민들의 치안과 감찰을 담당하는 일개 순경이었을 뿐”이라는 강계봉 순경의 소박한 말이다. 그렇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때, 그곳에서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던가? 목숨과 재산을 지켜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했던 공직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던가? 100 명의 혐의자들 가운데 섞여 있을지도 모를 억울한 사람 하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눈을 한 번 더 비벼보고, 자신의 귀를 한 번 더 의심했던 공직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었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이 무엇인지, 법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그때, 그곳에서 조용한 양심의 소리에 따랐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던가?

▲ 의인의 동산
캄캄한 하늘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보며 경이감을 느낄 때처럼, 나는 칠흑같이 어두웠던 4·3기간동안 자신의 소임을 다했던 제주의 군인과 경찰, 목사와 주민들을 기억하며 경이로움을 느낀다. 반(反)인도와 비(非)인도가 판치던 시절에는, 사람의 길(人道)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 자체가 존경할만한 미덕이 된다. 그들이야 말로 “너의 의지와 준칙이 네게 명하는 대로 행하라”는 서구의 지성, 칸트의 정언명법을 몸소 실천한 계몽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이제 인권과 인도와 평화를 이야기 하기 위해 더 이상 쉰들러를 들먹일 필요가 없다. 앞으로는 4·3 생존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귀한 이름들과 그들의 행적을 기억하자. 조남수, 김남원, 문형순, 김익렬, 김성홍, 장성순, 강계봉. 왜 이들밖에 없겠는가? 생존자들의 기억 속에서만 자리 잡고 있는 분들의 이름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일은 우리 후세대가 당연히 할 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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