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2주년 제주인기협 기획] ①제주4·3 피해자 배·보상 법제화 필수

제주4.3에는 여전히 온기와 냉기가 교차한다. 국가 수반인 대통령이 4.3추념식에 참가해 제주도민에 사과하고 위로하면서 4.3해결을 향한 훈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수형인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유족 신고 상설화, 지속적인 유해발굴, 4.3 책임규명 등 아직도 갈길이 멀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제주4.3 72주년을 맞아 5회에 걸쳐 4.3 기획보도를 싣는다. / 편집자주
지난 2006년과 2018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가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지난 2006년과 2018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가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의 20대 국회 통과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국민들의 촛불혁명으로 2017년 5월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제주4.3 완전 해결'을 포함시켰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4월3일 대통령으로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 이후 12년만에 4.3추념식에 참석해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잡았다"고 선언했다.

국가수반의 분명한 사과와 단호한 진상규명 의지는 70년 세월을 불명예와 고통 속에 울분을 삼켜온 제주도민과 4.3희생자 유족들의 멍든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듯 했다.  

문 대통령은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사업, 유해발굴사업 등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때만 해도 4.3특별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17년 12월19일 '제주4.3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발의됐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안은 유족회와 4.3범국민위원회, 그리고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의 합작품이었다. 

4.3유족회가 배보상특별위원회를 만들고, 4.3특별법 개정안 마련과 입법활동을 위한 법률지원단을 구성했다. 이석태 변호사(현 헌법재판관)를 단장으로 고호성 교수,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 문성윤 변호사, 이재승 교수 등이 참여했다.

법률지원단은 범국민위의 개정시안을 바탕으로 5차에 걸친 회의를 거쳐 개정안을 마련, 2017년 10월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더 수렴한 뒤 12월1일 최종 시안을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오영훈 의원이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게 된다.

지난 2006년과 2018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가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지난해 10월18일 국회 앞에서 제주4.3희생 유족들이 상복을 입고 일부는 삭발한 채 4.3특별법 개정을 강력히 촉구하는 모습. 

4.3특별법 개정안은 법률 명칭을 아예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로 바꿨다. 

그동안 유족과 희생자, 4.3단체에서 꾸준하게 제기해 왔던 배·보상 문제를 특별법 개정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배·보상은 재정지원을 포함해 피해자에 대한 정치공동체의 ‘인정’이자 피해자가 공동체의 자원임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행위다. 헌법과 보편적인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에 대한 손해 배·보상의 의무는 국가에 있다.

법률안은 여야 60명의 국회의원 동의를 받아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3의 완전한 해결을 국정과제로 삼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까지 4.3특별법 개정에 찬성하면서 통과는 손쉽게 이뤌 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4.3특별법 통과는 사실상 좌절됐다. 공직선거법 및 검경조정, 공수처법 등 개혁입법 처리과정에서 여·야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4.3특별법 개정은 좌초되고 말았다.

지난 1999년 제주4.3특별법 제정 당시에는 배·보상 문제는 아예 꺼내지도 못했다.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특별법 통과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4.3문제 해결의 1단계가 명예회복, 국가의 사과, 국가 차원의 추념이라고 한다면, 2단계는 국가가 개인의 피해 회복을 포함하는 배·보상 실행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후 정부의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발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등 2명의 대통령이 도민 앞에서 4.3을 국가의 잘못된 공권력에 의해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다.

정부와 국가수반인 대통령의 사과한 만큼 이제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제주4.3 희생자와 유족에게 인적·물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보상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국가 권력 피해에 대해 국가가 배‧보상하는 것은 세계사의 보편적인 권리”라면서 4.3특별법 개정과 희생자 배·보상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개별 유족들이 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청구를 통해 국가를 상대로 배보상을 받아내야 하는 지난한 재판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제로 생존 수형인들은 지난해 1월 재심 재판을 통해 70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고,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수형인 유족들도 재심 재판을 청구하면서 본격적인 명예회복과 배상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불법 구금되거나 수형인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무장대나 군경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는 아예 배·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부마민주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 역시 특별법을 통해 국가로부터 배·보상을 받았다. 제주4.3특별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정부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4.3특별법 개정안에 찬성하고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20대 국회에서 3년 동안 표류하다 결국 물거품 됐다"며 "제주 4.3 72주년을 맞고 있는데 21대 국회에선 반드시 4.3특별법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은 “국민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면 합법적인 공권력이라 하더라도 보상을 해야 한다. 만일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한 것이라면 배상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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