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1차산업 축소' 발언 반발 농민 천막농성장, 면담 확약 후 하루만에 철거

농민단체 천막농성장 뒤로 보이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집무실(붉은 원). ⓒ제주의소리
농민단체 천막농성장 뒤로 보이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집무실(붉은 원). ⓒ제주의소리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의 '1차산업 축소' 발언을 두고 제주도청 본관 현관 앞에 설치된 천막이 밤샘농성 끝에 하루만에 철거됐다.

오 지사와 김 의장이 농민단체와의 면담을 확약하면서 1차적인 진화가 이뤄졌지만, 제주도정의 소극적인 소통이 하룻밤이긴 하나 천막철야농성까지 이어지게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도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청사 건립 42년만에 집무실을 옮긴 '북향 제주도지사실'의 이전 취지가 무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3일 제주도청 본관 현관 앞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회원들은 밤샘 농성을 벌인 후, 14일 오전 출근하던 오 지사를 붙잡고 짧은 면담을 가졌다.

방송사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고 오전 9시 40분께 도청에 들어오던 오 지사는 발걸음을 가로막는 농민들에게 "(1차산업 축소와 관련한)제 발언이 잘못 전달돼 속상해 하실 수 있지만, 제 뜻과 취지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당시 "1차산업 비중을 8%대로 낮춰야 한다"는 취지로 논란을 일으킨 발언은 제주도가 1차산업을 축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 아닌, 시대 흐름 상 축소되고 있는 1차산업을 적정선에서 관리하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는게 제주도의 설명이다.

오 지사는 농민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다음주 초에 일정을 잡아서 공식 면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비서진과의 조율을 통해 오 지사와 농민단체는 17일 오전께 공식적인 면담을 갖기로 했다. 일정이 확정된 이후에야 농민단체는 내부 논의 끝에 14일 오전 11시께 도청 내 농성천막을 철수했다.

오영훈 제주지사가 14일 오전 9시45분께 도청 현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전농 제주도연맹과 전여농 제주도연합 회원들과 짧은 면담을 가졌다.<br>
오영훈 제주지사가 14일 오전 9시45분께 도청 현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전농 제주도연맹과 전여농 제주도연합 회원들과 짧은 면담을 가졌다.

농민들은 오 지사와의 면담이 성사된 직후, 곧장 '1차산업 축소' 발언 논란의 또 다른 진원지인 제주도의회 앞을 찾았고, 때마침 의회를 나서던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과 대치했다.

김 의장은 해당 발언에 대해 "표현이 부족했다. 추후에 일정을 잡고 다시 논의하자"고 진화에 나서며 차량에 탑승했지만, 차량 앞에 드러누우며 강하게 반발하는 농민들의 저지를 마주해야 했다. 김 의장은 다시 차에서 내려 "표현력이 부족했다면 죄송하다"며 사과했고, 도보로 큰 길까지 나선 이후에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제주도정의 소극적인 대응이 도청 내 천막농성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농민들은 전날 오전 기자회견 직후 지사와의 면담을 시도했으나, 출타 중이라는 답변을 들어야했고, 정무부지사라도 나와 추후 면담 일정을 잡아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 거부 당했다. 제주도는 청원경찰을 비롯해 도청 내부 직원들까지 동원되며 입구를 봉쇄했다. 책임있는 농민단체 대표자 2~3인만이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요구했음에도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약 4시간에 걸친 대치 끝에 농민회는 천막농성장 설치라는 강수를 빼들었고, 그제서야 정무부지사와의 면담이 성사될 수 있었다. 농민들이 "천막이라도 치지 않았으면 책임있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겠느냐"라며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은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14일 오전 전농 제주도연맹과 전여농 제주도연합 회원들이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을 만나 '1차산업 축소'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제주의소리<br>
14일 오전 전농 제주도연맹과 전여농 제주도연합 회원들이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을 만나 '1차산업 축소'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영훈 도정은 출범 직후 제주도청 본관 2층의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던 남향 제주도지사 집무실을 같은 층 북향 공간으로 이전했다. 1980년 제주도청 준공 이후 42년만이다. 이전된 도지사 집무실은 창문을 통해 제주도청 정문이 한 눈에 들어오게끔 만들어졌다.

오 지사는 당선인 시절부터 제주도청 앞에서 주요 현안을 두고 각종 집회와 시위가 많이 열리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집무실 이전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굳이 집무실 창틀까지 넓게 바꾼 것도 '도민과의 소통 강화' 의지를 내비친 결정이었다. 실제 이날 설치된 천막농성장에서도 오 지사의 집무실은 한 눈에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전임 원희룡 제주도정이 마무리되면서 함께 정리됐던 천막농성장이 재등장한 현장은 '소통 강화'를 약속해 온 오영훈 도정의 철학과도 역행하는 결과였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우리도 대화와 타협을 위해 이 자리에 나선 것이다. 제주도가 아무런 대응조차 없었기에 부득이하게 천막까지 치며 반발했던 것"이라며 "일단 오 지사와 김 의장과의 면담 일정이 잡혔기 때문에 면담 이후 차후 대응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귀포시에서 넘어와 농성을 벌인 또 다른 농민회 관계자는 "오 지사가 어제는 일정이 있어서 도청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전화 한 통이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다"며 "오 도정이 벌써부터 소통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도민의 정부, 도민 소통을 강조해온 오영훈 도정의 진정성을 지켜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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