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4.3보상금 후유장애인, 정신적 외상 등 반영 못해...재심의 절차 촉각

다리 등이 총칼에 찔렸고 전신에 구타를 당함. 경찰 구둣발로 턱을 맞아 이빨이 모두 무너짐. 심한 구타로 엉치가 함몰되고, 옆구리도 찢어져 정신을 잃음. 무서워서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함. 후유증으로 평생 제대로 걷지 못함.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녔고, 주저앉아 다리를 끌고 다니며 농사일을 했음. 지금까지 걷지 못해 기어 다니고 있음. - 89세 A할머니

토벌대가 쏜 총에 엉치 부분과 옆구리에 총상을 입음. 치료를 못해 오랫동안 누워서 지내야 했음. 허리도 아프고 잘 걷지 못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 다리에 힘이 없어 절뚝거리며 다녀야 했고, 총상 이후 지금까지 몸이 아프고 통증이 심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 - 93세 B할아버지

무장대의 죽창에 안면부를 찔려 부상당함. 얼굴에 남은 흉터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음. 70년이 지나 흉터가 많이 연해졌으나 이전에는 많이 흉해서 바깥 활동하는 것이 저어되었으며 자식들 또한 어릴 때 어머니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자랐다고 함. - 79세 C할머니

왼쪽 다리 두 군데에 총상을 입음. 왼발을 질질 끌고 다녔음. 소변보러 가지도 못함. 앉아서 바닥을 밀고 다니니 엉덩이 피부가 다 벗어져 통증이 심함. 엉덩이에 붙인 파스가 떼어지는 날이면 죽을 듯한 고통을 느낌. 아파서 다리가 없는 게 낫겠다 싶었음. 발이 틀어져서 굳어 버렸고 진통제 등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있음. 왼쪽 다리를 못쓰니 오른쪽 다리에 무리가 생겼음.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머리를 많이 아파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 - 100세 D할머니

제주4.3당시 총격으로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당한 후유장애 희생자. 
제주4.3당시 총격으로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당한 후유장애 희생자. 

지난 10월27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산하 보상심의분과위원회. 심의에 앞서 추가 보완·작성된 보고서에는 4.3후유장애인에 대한 신상정보와 사고 경위, 면담내용 등이 간략하게 담겨있었다. 

특히 후유장애인의 부상부위가 적나라하게 찍힌 사진이 2~3장씩 첨부됐다. 단순 '대퇴부 총상', '옆구리 창상' 등의 기록만으로는 정확한 실태를 파악할 수 없다는 의견이 모이면서다.

다만, 이 같은 절차를 거쳤음에도 최종 심의결과에 납득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과연, 몇 줄의 글과 사진 몇 장만으로 희생자들이 지나온  삶의 무게를 재단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 최대 보상금 지급자 고작 13명뿐...후유장애인 보상 차등지급 논란

이날 심의에서는 제주4.3으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 된 220명의 희생자를 비롯해 당시 사고로 인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온 77명의 후유장애인 등에 대한 보상금 지급이 결정됐다. 74년 전 벌어진 국가폭력의 보상이 확정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4.3을 둘러싼 제주사회는 물론, 보상금 지급기준이 하향 적용된 후유장애인 당사자들은 온전히 기뻐할 수 없었다. 적게는 70대 후반, 많게는 100세가 넘은 후유장애인들은 70여년 삶의 무게가 14개로 나뉘어진 장해등급으로 저울질 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심의 당시 사망 또는 행방불명 희생자에 대한 9000만원의 보상금 지급 결정은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이미 법 조문으로 명시된만큼 굳이 별도의 심의 과정 없이도 사망자·행방불명자에게는 최대 금액의 보상이 이뤄져야 했다.

다만, 후유장애인 보상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4.3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후유장애 희생자는 14개 장해등급을 3개 구간으로 구분해 1구간(1~3등급)은 9000만원, 2구간(4~8등급)은 7500만원, 3구간(9~14등급)은 5000만원을 상한으로 뒀다.

4.3특별법은 후유장애인에 대해 '장해등급, 노동력 상실률 등을 고려해 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명시했다. 즉, 장해등급은 고려사항 중 하나일 뿐,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다는 의미다. 장해등급만으로 보상급 지급기준을 정한다면 굳이 분과위를 열어 심의를 거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심사 결과 후유장애인 77명 중 최대 보상금인 9000만원을 지급받는 1구간 희생자는 13명(17%)에 불과했다. 7500만원이 지급되는 2구간 희생자는 41명(53%), 5000만원이 지급되는 3구간 희생자는 23명(30%)으로 결정됐다.

제주4.3당시 총알이 오른쪽 손목을 관통해 절단해야 했던 후유장애 희생자.&nbsp;<br>
제주4.3당시 총알이 오른쪽 손목을 관통해 절단해야 했던 후유장애 희생자. 

◇  외상 외 정신적 고충 토로한 후유장애인들...'트라우마' 무시된 심사 결과

[제주의소리]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심사 대상 후유장애인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장해등급이 낮게 책정됐다 한들, 그들의 고통은 한두 장 보고서에 축약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젖먹이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있다가 토벌대의 총격에 의해 왼발에 총상을 입은 김모 할머니. 왼발 성장이 더뎌 양 다리의 길이가 다르고, 발가락도 틀어져 모양이 흉해졌다. 한쪽 다리에만 힘이 쏠리다보니 오른쪽 다리마저 통증이 생겼고, 계속해서 관절 약을 복용해야 했다.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걷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상처 부위만을 두고 매겨진 장해등급은 낮게 책정됐다.

13살 때 토벌대가 쏜 총과 죽창에 맞아 복부에 부상을 당한 강모 할머니. 어지럼증과 혈압이 떨어져 주기적으로 쓰러져 젊었을 때도 이유 없이 자주 입원하는 일이 빈번했다. 간혹 숨을 못 쉴 정도로 혈압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병원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검사를 다 해봐도 원인을 찾지 못해 약으로 살아갈 정도로 많은 종류의 약을 복용해 왔다. 이 역시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낮은 장해등급으로 분류됐다.

6살 소녀 시절 무장대의 죽창에 얼굴을 찔리는 부상을 당한 고모 할머니는 얼굴의 흉터가 평생의 스트레스였다. 70년이 지나는 동안 주름이 내려앉고, 흉터도 많이 연해졌지만, 사춘기 시절에는 바깥 활동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자식들 또한 어머니의 흉터를부끄러워했다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물론 장해등급만으로 분류할 시에는 단순 상처에 불과할 뿐이었다.

제주4.3당시 주둔 군인들이 남겨놓은 폭발물이 폭발해 파편으로 부상을 입은 후유장애 희생자.&nbsp;<br>
제주4.3당시 주둔 군인들이 남겨놓은 폭발물이 폭발해 파편으로 부상을 입은 후유장애 희생자. 

개개인마다 장애의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다만, 의학적으로는 단순한 상처로 분류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삶과 자아를 통째로 앗아간 상처일 수 있다.

실제 추가 조사과정에서 면담에 응한 희생자들은 단순 몸의 상처만이 아니라 장애로 인한 삶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유년 시절의 따돌림, 부모가 눈 앞에서 희생된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되는 악몽, 우울감에 따른 충동 등이 대표적이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을 의미하는 '트라우마'는 현대 의학에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됐다. 중대재해에 의한 후속조치 과정에는 빠지지 않고 트라우마 관리의 필요성이 강조되곤 한다. 단순 재해가 아닌 국가폭력에 의한 4.3에 있어 이 같은 트라우마가 반영됐는지는 의문이 일 수 밖에 없다.

혹자는 한 팔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희생자와 옆구리에 흉터가 남아있는 희생자를 똑같이 취급할 수 없지 않느냐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한평생 한쪽 팔을 사용하지 못한 이에게 고작 9000만원의 보상금만을 안겨줄 수 밖에 없는 관련 규정과 현실을 탓하는게 타당할 수 있다.

◇ 20년 전 장해등급 판단 적정성 의문도...재심의 절차 이뤄질까

후유장애 희생자들에게 매겨진 장해등급의 적정성도 의문이다. 후유장애인 장해등급 분류는 4.3특별법이 제정될 당시인 2000년대 초반에 이뤄졌다. 당시에는 보상이라는 개념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단순 진료·치료를 위해 편의상 평가된 등급이었다.

1948년의 상처를 2000년대 시각으로 평가한 것도 무리가 있지만, 다시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해당 등급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청년시절 그들의 노동력 상실 정도를 수치화할 수 없듯, 노년이 된 그들의 고통 역시 수치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77명의 후유장애인들에 대한 보상분과심의위위원회 심의 결과는 행정안전부로 넘어가 최종 절차를 밟고 있다. 행안부에서 제주도로 개별 정보가 제공되면 제주도는 보상금 지급 절차에 착수할 방침이다.

4.3 당시 총격에 의한 부상에 양 다리의 길이가 달라진 후유장애 희생자.

다만, 제도적으로는 보상금 지급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될 경우 청구권자에 한해 한 달 이내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보상급 지급 등급이 2구간, 3구간으로 분류된 후유장애인 당사자가 재심의를 요구하면 새롭게 심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심사가 완료된 후유장애인에 개별적인 통보가 이뤄지면 이 같은 절차가 보다 구체화·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77명에 대한 최종 심의 결과는 추후 추가 심사대상이 되는 17명의 후유장애인에 대한 평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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