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제주지법, 징역형 집행유예 故 김두홍 원심 파기해 무죄 판결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고(故) 김두홍의 명예가 1982년 7월 불법 구금 이후 43년만에 회복됐다. 

14일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부장 오창훈, 항소심)는 아들 김병현씨가 청구한 김두홍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불법구금과 고문 등 인권침해로 이어진 자백은 증거로서 능력이 없고, 허위 진술 강요는 재판부의 오판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문 등 불법 행위에 따른 피고인의 허위 자백 말고는 김두홍의 공소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 원심을 파기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판결 직후 [제주의소리]와 만난 재심 청구인 김두홍의 아들 김씨는 “기쁘다.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도와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해 수류탄 파편이 머리에 박히며 목숨이 위태한 상황에서도 나라를 지킨 김두홍은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피해자다. 

1931년생인 김두홍은 1982년 7월20일 경찰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 

가족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한 김두홍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시키는대로 말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 등의 혐의로 기소돼 간첩이 됐다. 

사정당국은 1981년쯤 김두홍이 수개월간 일본에 다녀온 일을 문제 삼았다. 4.3 등을 겪으면서 제주를 떠나 일본에 자리 잡은 재일제주인이 많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김두홍은 집안의 대를 이어 제사와 벌초 등 대소사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큰 집이 일본에 터를 잡자, 제주에서 제사와 벌초를 도맡았다. 일본의 큰 집은 자신들을 대신하는 김두홍을 초대, 일본 여행을 선물했다. 

시샘한 김두홍의 사촌형제의 아내는 당시 경찰이던 자신의 오빠(김두홍의 사돈)에게 알렸다. 남북 관계가 나빴던 당시에 김두홍과 비슷한 간첩 조작 사건이 많았다는 진실은 이미 드러나 있고, 사정당국 소속 직원들은 공안사건을 특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기도 했다. 

김두홍이 일본에서 만난 친척 중 1명이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소속이라고 밀고했고, 김두홍은 일본에서 조총련과 만남을 가지고 귀국한 뒤 북한을 찬양한 간첩으로 몰렸다. 

갖은 고문으로 허위 자백한 김두홍은 법원에 출석해 고문 등의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간첩 행위를 부인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에서 징역 3년형 집행유예 3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형 집행유예 3년에 처해졌다. 

이후 김두홍은 누가 자신을 잡으러 온다며 보릿대에 숨거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또 자녀들이 공부해도 성공할 수 없다며 책을 불태웠다. 실제 김두홍의 자녀 중 1명은 우수한 성적으로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치렀지만, 신체검사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떨어지기도 했다. 

김두홍은 간첩 조작의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2004년 사망했으며, 2006년에 한국전쟁 참전 국가유공자로 선정되는 기쁨도 직접 누리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흘러 2023년 6월 김두홍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같은 해 12월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진실규명 결정과 함께 재심을 권고했다. 

1982년 8월5일에야 김두홍에 대한 영장이 발부·집행됐는데, 실제로는 보름 전인 7월20일 김두홍이 불법 체포·구금 등 인권침해가 있다는 결정이다.  

진화위 조사 과정에서 김두홍을 담당한 수사관들은 불법 체포·구금, 고문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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