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교통정책] ②렌터카 총량제
교통혼잡-안전사고 책임론에 직격탄
제주는 1990년대 본격적인 마이카시대를 맞아 차량이 급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각종 택지개발로 인구도 늘었다. 2010년대에는 관광객까지 밀려들면서 교통인프라가 포화 상태에 놓였다. 주요 도로는 막히고 도심지 곳곳에서 주차 전쟁이 벌어졌다.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 2017년 버스준공영제가 도입됐다. 렌터카총량제와 차고지증명제 등 각종 정책도 쏟아졌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수송 분담률은 제자리걸음이다. 갖은 교통정책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제주 교통정책의 현주소를 순차적으로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 주]

국내 렌터카의 시작은 40년 전인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렌터카가 서울에서 돈을 받고 차량을 빌려주는 일본식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 시초다.
당시만 해도 차는 소유의 개념이 강했다. 1980년대 경제 성장과 함께 마이카시대가 찾아오면서 집과 함께 자동차는 부(富)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자산이었다.
반면 제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박정희 정권에서 제주는 관광 육성 사업이 본격화 됐다. 1970년대 중문관광단지 개발과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확장 등 인프라 확충이 이뤄졌다.
관광객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렌터카 시장이 만들어졌다. 1978년 토종기업인 ㈜제주렌터카가 차량 30대로 첫 영업을 시작하면서 제주는 렌터카의 본고장으로 성장했다.
2006년에는 전국 최초로 등록대수 1만대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2만대를 웃돌았다. 이후 대기업이 잇달아 제주에 진출하면서 불과 3년 만인 2017년 3만대마저 넘어섰다.
렌터카가 급증하면서 차량 대여가 이뤄지는 제주공항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버스와 택시, 자가용까지 뒤엉키면서 공항은 물론 주변 도로까지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졌다.
초행길 운행으로 인한 교통사고 증가와 골목길 불법 주정차로 인한 렌터카 민원도 극에 달했다. 부정적 여론이 이어지자 제주도는 전국 최초로 총량제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치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 2018년 렌터카 수급조절 권한을 제주도지사에게 이관하는 내용의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제주도는 후속 조치로 여객자동차운수사업 조례를 개정하고 렌터카 수급조절위원회를 거쳐 렌터카 총량을 2만5000대로 산정했다. 이어 그해 9월 전국 최초로 총량제를 전격 시행했다.
더 나아가 렌터카 신규 허가도 제한했다. 그 사이 도내외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렌터카 증차에 나서면서 효과는 반감됐다. 신차는 막았지만 기존 차량을 강제로 줄일 방법이 없었다.
이에 제주도는 업체들의 자발적인 감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도내 일부 업체는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대기업 등 상당수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제주도가 초유의 운행제한 처분으로 맞서면서 갈등은 심화됐다. 이에 업체들은 행정소송으로응수했다. 제주도가 패소하면서 렌터카 총량제는 도입 초기부터 치명상을 입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신규 등록 차단과 일부 자율감차를 통해 렌터카를 3만대 밑으로 떨어뜨리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현재 등록된 도내 렌터카는 2만9785대다.
제주도는 2018년부터 초기 2년간 교통혼잡비용 113억원, 교통사고비용 62억원의 절감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2024년까지 총량제 시행을 2년 더 연장했다.
대신 관광객 수요를 고려해 렌터카 적정 대수를 기존 2만5000대에서 2만8300대로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른 사회적 편익을 627억원(2022~2025년)으로 추산했다.
반면 추가적인 자율감축은 요지부동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차량 1485대를 추가로 줄여야 한다. 업체들이 동참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렌터카 면허 몸값이 오르고 있다.
택시처럼 렌터카 면허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곳곳에서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신규 차단으로 영업 확장이 어려워지면서 소규모 업체는 경쟁사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실제 대기업인 롯데렌탈은 최근 영세업체를 줄줄이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롯데의 등록 차량은 3198대, SK렌터카는 2947대다. 이미 시장의 21%를 장악했다.
총량제를 틈타 타 지역에서 제주로 불법 유상운송행위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1년 214건, 2022년 156건, 2023년 157건, 2024년 145건 등 4년간 적발 건수만 672건에 이른다.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무등록여행업자가 제주에서 일반 승합차량을 이용해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불법 유상행위를 하는 경우도 급격히 늘고 있다.
중국은 ‘제네바 도로교통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자국 면허증으로 국내에서 렌터카 대여를 할 수 없다. 이에 여행사에서 마련한 버스나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야 한다.
관광객 유치와 소비 진작을 위해 관광업계를 중심으로 중국인의 렌터카 대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반대로 대여 비용증가와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제주도는 2026년 9월까지 렌터카 총량제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부작용도 있지만 차량 증가 억제와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렌터카는 관광객의 이동 편의 측면에서 중요한 인프라다. 반대로 교통혼잡을 야기하고 안전 사고 위험과 함께 대중교통 분담률을 떨어뜨리는 요인도 되고 있다.
제주도는 내년 렌터카 수급조절에 대한 평가를 거쳐 제도 유지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렌터카 시장의 무질서한 영업 행위를 막기 위해 단속도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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