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올레길 편지] 3. 그가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인 올레길 단상입니다. [제주의소리]가 ‘서명숙 올레길 편지’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누구나 길과 하나가 되어 가슴에 맺힌 상처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와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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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연달아 편지를 띄울 생각은 없었다. 받는 분들도 너무 뜸하면 서운하겠지만 너무 자주 소식을 투척해도 민폐일 듯해서였다. 무엇보다도 그저 풍경 하나하나, 만나는 마을 마을을 깊이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허나 한 올레꾼의 사연이 내 마음을 움직였고, 그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들려주고 싶었다. 그가 경험한 치유와 그가 품게 된 희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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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4코스 / 사진=서명숙

그를 만난 것은 제주올레 14코스 월령마을 선인장 군락지를 지나 큰 도로를 건너서 오시록한(은밀한을 뜻하는 제주어) 천변길로 접어들어 십여 분쯤 지났을 무렵!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기다란 집게와 비닐봉지를 든 채 걸어 내려왔다! 앗 클린올레를 하는 분이구나! 길에서 만나는, 가장 반갑고 귀한 존재다. 당근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수고하시네요.”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받으시던 그분이 날 알아본다. 두 번째 완주증을 받을 때 내게 완주증을 받고 사진도 같이 찍은 적이 있단다. 몰라보는 내 안면 인식 장애를 또 죄송해하면서 그에게 거듭 감사드렸더니 그가 정색하고 답하기를 “올레길에서 제가 받은 게 너무 많아서요. 조금이라도 그 고마움을 갚으려고요.” 그의 어조가 너무도 곡진하고 간절해서 상투적인 덕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못 말리는 기자 본능이 발동한다. 아니, 올레길에서 대체 무얼 그리 많이 받으셨길래요? 질문을 일단 투척해 본다.

아, 그의 대답은 내가 짐작한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65일간 내리 걸었다. 그것도 두 코스씩! 

“실은 제가 재작년에 마누라를 떠나보냈어요. 암으로 8개월 투병하다가 저세상으로 훌쩍 떠났어요. 그때부터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도 만나기 싫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중증 상태였어요.”

그러던 중 작년 여름께 우연히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하나 봤더란다. 올레길을 담은. 문득 아내 죽음 이후 처음으로 저곳에 가서 하염없이 걸어나 볼까 싶더란다. 

“일단 올레길과 관련된 책을 서너 권 주문해서 싹 다 읽었죠. 그리곤 추석 명절 지난 직후 제주로 내려와서 걷기 시작했어요. 65일 동안 정말이지 쉬지 않고 걸었죠. 하루에 두 코스씩.”

아, 나는 지난번 편지에서 반주의 맛을 이야기했지만, 시시때때로 쉼 없이 빠르게 걸으면서 몸을 혹사하는 것이 수시로 마음을 괴롭히는 모든 고통스러운 생각을 떨쳐내기엔 더 유효했을 터. 반주든, 완주든, 더블 주든 길의 속도에 정답은 없는 법. 각자 자신에게, 그때 필요한 몸의 속도가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여관에서 지내다가 아예 서귀포 올레 센터 뒤편에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구입했어요. 올레 아카데미도 신청하고,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클린올레도 하게 되고….”

세 번 완주 때까지는 그냥 걸었고, 네 번째 다섯 번째는 클린올레로 완주 중이라는 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청춘 시절을 떠올렸다. 대학 4학년 때 다니던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짧은 감옥생활 뒤 돌아온 고향이었지만, 내겐 사람의 그 어떤 말에서도 위안을 받을 수가 없었더랬다. 너무나 굳어버린 내 마음 밭에 유일하게 위로의 씨앗을 뿌린 건 외돌개 근처 ‘폭풍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망망대해 수평선 풍경이었다. 말 없는 바다만이 내 눈물을 받아내고 묵묵한 소나무가 내 옆을 지켜주었던 그 시절, 그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나는 세상으로,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기운을 차리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이분은 인간이 살아서 받는 스트레스 중 가장 크다는 배우자와의 사별을 겪은 터니 오죽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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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7코스 / 사진=서명숙

같이 걷고, 희망도 품게 되었다 

지금은 어떠하신지요, 묻기도 전에 그가 대답했다. 

“지금은 웃을 수도 있게 됐어요. 가끔은. 숫기가 없는 편이라서 늘 혼자 걸었는데 이젠 같이 걷기도 하고. 희망이라는 것도 생겼어요.”

나는 그에게 희망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대신 그의 사연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려도 되겠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이 순간 절망과 우울의 늪에 빠진 많은 이들을 위해.

​그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란다.

​자신을 살린 올레길에 대한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되갚기 위해 완주할 때마다 437km 후원, 27개 코스 후원도 하고, 최근 탐사대 트럭 후원에도 마음을 보탰다는 제주올레 정기후원자. 그는 1959년생 정사현!

14코스에서 우연히 만난 서명숙 이사장님과 정사현 님 / 사진=서명숙
14코스에서 우연히 만난 서명숙 이사장님과 정사현 님 / 사진=서명숙
제주올레 14코스를 역방향으로 걷고 있는 서명숙 이사장 / 사진=서명숙
제주올레 14코스를 역방향으로 걷고 있는 서명숙 이사장 / 사진=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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