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올레길 편지] 4. 최연소 완주자에 도전하다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인 올레길 단상입니다. [제주의소리]가 ‘서명숙 올레길 편지’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누구나 길과 하나가 되어 가슴에 맺힌 상처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와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올레 11코스 중간 스탬프 박스가 있는 정난주 마리아 성지에 도착한 것은 3.1절 다음 날 오전. 전날인 3.1절처럼 그날도 역시 아침부터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람의 강도가 더 세졌다. 평소에도 모슬봉에 올라가면 없던 바람도 느끼게 되는데 설상가상 아닌가!

그나마 오늘은 동행이 있으니 다행이다. 오늘의 길벗은 후배 여성학자 오한숙희가 쓴 책 '우리 희나'의 주인공 장희나와 희나 이모 오진희 언니. 오한숙희는 요즘 돌보고 있는 발달장애아 주연이가 워낙 걷기를 싫어하는지라 자동차로 우리 일행을 이곳으로 데려다주고, 자기네는 모슬봉 입구에서 근처를 산책하고 있겠단다.

/ 사진=서명숙
제주올레 11코스 : 정난주 마리아 성지 / 사진=서명숙

이곳은 그야말로 수십 번은 들른 곳. 완주 중에도 지나가고 행사 참가 차 들르기도, 이 근처를 지날 때면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서 일부러 찾기도 하는 곳이다. 

어제 여기에서 반주의 발걸음을 멈췄기에 다시 찾아 왔지만 이곳에 올 때마다 조선조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한 시대의 질곡,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혹독한 시련을 긴 세월 온몸으로 견뎌낸 한 여인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유배지 모슬포에서 37년을 살아낸 그녀의 삶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따로 자료를 검색해 보시길).

오한숙희가 엄마랑 잠시 헤어져서 걸을 딸 희나의 우중 올레 복장을 챙겨주는 동안, 나는 한동안 못 가게 될 화장실을 다녀왔다.

최연소 완주자가 되는 게 목표예요

어라,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아까는 안 보이던 아기 유모차와 젊은 부부가 보이는 게 아닌가! 신앙심이 어지간히 깊은 부부인가 보다. 이런 궂은 날 유모차까지 끌고서 대정 성지를 찾다니, 순간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다. 이곳은 올레꾼 말고도 천주교 순례자나 성지 참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므로.

헌데 이게 뭔 일?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열혈 엄마바라기인 희나가 엄마 오한숙희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실랑이하는 걸 지켜보는 사이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더니, 세상에나 방금까지 땅 위에 있던 유모차가 아빠 등 위에 배낭처럼 얹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제야 부부의 차림새가 완벽한 아웃도어 복장인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어머나, 최연소 완주자에 도전하시나 봐요.”

모슬봉을 향해 발길을 옮기던 애 아빠가 뒤를 돌아보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잖아도 저희 꿈이 아이가 최연소 완주자가 되는 거예요.”

아니, 아니 이럴 수가! 비가 내리고 있지만 내 질문 본능은 이미 질주를 시작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성남요.”

“얼마나 걸은 거예요?” 

“절반쯤 했고, 절반 남았어요. 올해 올레 축제 때는 완주자 깃발 꽂고 축제에 참가하는 게 저희 부부 꿈이어요. 애써봐야죠.”

/ 사진=서명숙
11코스 중간 지점에서 만난 최연소 완주자에 도전하는 성남에서 온 올레꾼 가족 / 사진=서명숙

대박!!! 지난해 축제에 아이를 둘러메고 참가했었는데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더란다. 이거야말로 올레길 편지 소재로 딱이겠구나 싶었다. 먼저 알아보지 않는 한 누구인지 안 밝히는 편이지만, 연락처를 얻기 위해 길을 낸 여자임을 밝혔다. ‘깜놀하는’ 부부에게 ‘길 위의 편지’에 대해 설명하고 비가 내려 더 이상 얘기하기 힘들 테니 나중에 궁금한 몇 가지를 문자로 물어봐도 되겠는지 양해를 구했다. 부부는 흔쾌히 오케이였다. 20개월이라는 아이는 신통방통하게도 이런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마치 모든 대화를 다 알아듣는다는 듯 진지하게 경청하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문 채!

캐나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부부

나중 알고 보니 두 사람 모두 캐나다 교포 2세. 남편 신승흔 씨는 15살에, 부인은 12살에 부모를 따라서 낯설고 물선 그곳으로 떠났단다. 현지에서 만나 결혼한 뒤에 부부는 다시 모국인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하고 있단다. 아웃도어 라이프가 일상처럼 자리 잡은 캐나다에서 성장기를 보낸 이들인지라 한국에 정착해서도 산으로, 들로 많이 다니다가 지난해부터 아이와 함께 올레를 찾았더란다.

처음부터 올레의 매력에 푹 빠져서 아이 메고 완주를 결심했다는 그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보냈다. 긴 세월 외국에서 지낸 아이 아빠가 보내온 답변은 요즘 한국에서 나고 자란 MZ세대의 한국어보다 훨씬 정확한 구사여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래서 그냥 나의 질문과 그의 답변을 그대로 옮기려고 한다.

제주올레 길의 환대, 아기 올레꾼 덕분! 

1. 올레길을 걷는 동안 가장 감동적,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아이를 둘러메고 걸어가면서 겪은 현지인들과의 교류입니다. 길을 걷는 저희를 불러 세워 아이에게 귤을 건네주는 농부에게서, 점심 먹으러 간 식당 사장님 부부가 문밖까지 나와서 길을 알려주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진정으로 제주올레 길에서의 환대를 느꼈습니다.

2. 걸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간, 장소가 있었다면 어디인가요?

너무나 많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상흔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남아 있어서 충격적이었던, 그리고 비 오는 3.1절에 지나가게 되어 더 충격적이었던 10코스의 알뜨르비행장이었습니다. 다크투어리즘의 참 의미를 느낀 장소였습니다.

제주올레 10코스 : 알뜨르 비행장 / 사진=서명숙
제주올레 10코스 : 알뜨르 비행장 / 사진=서명숙

3. 등 위에 업혀 길의 풍광을 즐긴 아기 올레꾼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기 올레꾼은 어디에서나 시선 집중이었습니다. 저희는 아웃도어 라이프를 사랑해서 애를 둘러메고 등산도 자주 가고 성남 누비길 코스들도 자주 돌았지만 가장 환영받은 곳은 아기 올레꾼의 힘듦과 대견함을 진정으로 공감해준 제주올레길이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11월 제주올레걷기축제 때는 정말 많은 환영과 칭찬을 받아 부모로서도 걷는 힘듦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의 답변을 읽노라니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의 잠언이 떠올랐다. 그렇다. 제주올레길의 온 마을이 그 부부와 아이를 응원했기에 그들이 여기까지 온 것이고, 그렇기에 틀림없이 올해 축제에 그들은 아이와 함께 완주자 깃발을 꽂고 참가하게 되리라.

성남에서 온 가족 올레꾼과 서명숙 이사장 / 사진=서명숙
성남에서 온 가족 올레꾼과 서명숙 이사장 / 사진=서명숙

참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희나’의 주인공 장희나도 10년 전에 엄마를 따라서 제주로 이주했고, 온 마을이 합세해서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고 응원했다. 그날 나보다 몇 발짝 앞서서 비 내리는 모슬봉을 오르내리는 동안, 희나는 비에 흠뻑 젖어서 돌돌 말려 들어간 리본을 끊임없이 풀면서 걸었다.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은 까치발을 들어가면서. 마을이 키워낸 아이가 이젠 우리를 이렇게 몸으로 가르친다.​

11코스 우중올레를 함께 한 장희나 양과 서명숙 이사장 / 사진=서명숙
11코스 우중올레를 함께 한 장희나 양과 서명숙 이사장 / 사진=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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