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해서 더 아픈 손가락] ② 선천성 심장 장애인 김수환씨

장애인 인구 270만명 시대. 그 중에서도 안면, 심장, 뇌전증, 간, 장루·요루, 호흡기 장애를 앓는 이들은 전체의 1%도 채 되지 않는 ‘소수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장애인이라는 소수자 안에서도 또다시 소수로 분류되며, 제도와 사회의 시선에서 더욱 먼 변두리에 서 있다. [제주의소리]는 이중의 소외를 겪고 있는 ‘소수장애인’들의 삶을 조명하며, 낯설고 적은 수라는 이유로 정책과 복지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의 현실은 어떤지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한다. [편집자주]


최근 제주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김수환씨는 선천성 심장기형을 앓고 있는 소수장애인이다. ⓒ제주의소리
최근 제주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김수환씨는 선천성 심장기형을 앓고 있는 소수장애인이다. ⓒ제주의소리

“제 심장은 하나예요. 보통 사람들처럼 심방과 심실이 두 개가 아니라, 각각 하나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살았고, 지금까지 인공 판막을 넣는 등 열 번이 넘는 수술을 견뎌왔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셈이죠”

최근 제주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김수환씨(31)는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장애등급을 받은 ‘내부장애인’이다.

그는 매일 아슬아슬한 생의 끈을 쥐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몸과 삶을 위협하는 건 질병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아픔은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로서 겪는 고립감, 사회복지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오는 외로움에서 더욱 깊어진다.

수화씨 고등학생 시절, 그는 상위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던 우등생이었다. 고1까지 성적은 줄곧 상위권. 그러나 고2 때 병세가 악화돼 1년 내내 병원에 입원했고, 수업은 물론 시험도 보지 못했다. 고3이 된 후에도 병원에 들락날락하며 수능을 겨우 치렀다.

수환씨는 “서울대학교 진학을 꿈 꿨는데, 1년 내내 입원을 하면서 수능도 병원에서 준비하게 됐다. 결국 붙은 곳은 목표한 곳에 훨씬 미치지 못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그 몸으로는 재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게임회사의 개발자에 도전했다. 하지만 밤샘 근무와 숙직실 생활이 일상인 개발 업무는 그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서류를 통과했지만, 면접에서는 “수환씨가 아무리 코딩을 잘해도, 그 몸으론 어렵겠다”는 말을 들었다.

체력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게임업계 특성상 밤샘과 숙직이 다반사인데, 심장이 불안정한 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현재 수환씨는 공기관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업무를 맡고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마음 어딘가엔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빈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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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관하고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후원한 ‘소수장애인의 복지욕구 및 실태에 관한 연구’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 ⓒ제주의소리

수환 씨가 포기한 건 진로만이 아니다. 결혼과 연애에 대한 꿈도 접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 그 두려움이 모든 관계를 가로막는다고 했다.

수환씨는 “지금도 심장이 멈춰서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반복되는데, 나 때문에 누군가 과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겁이 난다”며 “상대가 괜히 나랑 시간 보내느라 인생을 낭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20대에는 연애도 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되자 주위에서 하나둘 결혼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밀어냈다.

가족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고등학생 때는 “성공해서 병원비 다 갚아줄게요”라며 호기롭게 말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족의 돌봄에 기대며 살아간다.

심장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은 질병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이제 제주에서 흔히 보이는 장애인 콜택시. 수환씨와 같은 심장 장애인들은 교통약자 이동지원서비스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이용할 수도 없다.

수환씨는 “그날그날 심장 상태가 다르다. 저는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에서 항상 빠져 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장애인’은 그 어떤 교통약자 제도에서도 소외되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수환씨는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가며 종종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는다. 숨이 차고 심장이 조이는 날엔 특히 그렇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손가락질과 면박.

한번은 ‘어디 젊은 놈이 노약자석에 앉아있냐’고 면전에서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환씨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는 ‘설명해야만 인정받는 삶’을 강요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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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환씨가 그룹 인터뷰에서 심장 장애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을 전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무엇보다 심장 장애인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의료진 부족’이다. 현재 국내에서 복잡한 심장 수술이 가능한 흉부외과 전문의는 6명 수준. 故 신해철씨 사건 이후 의료사고 처벌이 강화되면서, 고위험 수술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퍼졌기 때문이다.

수환씨는 “제 주치의는 이미 정년 퇴임을 했지만, 후계자가 없어 계속 병원에 남아계신다”며 “이렇게 의사도, 환자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내년 수환 씨는 또 한 번의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재발 확률 40%, 사망 위험 20%. 이상적인 치료는 심장이식이지만, 이식 대기제도는 현실적으로 너무 까다롭기만 하다.

수환씨는 “기증 심장이 1년 안에 나오지 않으면 신청 자격이 사라진다. 그 이후로는 몇년간 대기 명단에 올릴 수도 없다. 그래서 정말 위급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하루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수환씨. 그가 바라는 건 그저 보통의 일상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꿈은 아직도 먼 길 위에 놓여 있다.

* 이 인터뷰는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관하고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후원한 ‘소수장애인의 복지욕구 및 실태에 관한 연구’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로 진행됐습니다. 수환씨와 같은 1% 미만의 소수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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