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돌담의 세계화] ② 나라·언어 달라도 ‘돌 쌓기 진심’ 통한 전 세계 석공들
제주도는 제주 돌담의 가치를 전 세계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석공들의 돌담 쌓는 기술에 대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가능성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던 제주돌담보전회가 등재 추진의 일환으로 지난달 20일부터 오스트리아 크렘스에서 열린 ‘19th International Congress on Dry Stone Construction & Workshop 2025’에 참가해 현장 분위기와 진행되는 프로그램 내용을 보내왔다. 이번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제기된 핵심 아젠다와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전략과 과제, 대표 등재국들의 고언, 등재 후 과제 등을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석공 워크숍이 열리는 오스트리아 크렘스는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그림 같은 전경이다. 나이 열여섯에 석공 일을 배우기 시작해 환갑이 훨씬 넘도록 이런 행사 참여는 처음이다. 행사 참여 제의를 받고 언어의 두려움과 좌충우돌 할 것을 생각하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했다. 외국 석공은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무슨 기술과 기법이 있을까? 유튜브로 본 간접 경험을 실제 경험해 보고자 용기를 내어 참석했다.
#석공 일 배운 지 50여년 만에 처음 참가한 국제 석공 워크숍
워크숍이 열리는 Wine School Krems and Dry Stone Walling School에 도착하니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 한 장 없다. 우리가 잘못 온 건가? 행사장이 왜 이리 썰렁하지? 두리번거리니 행사 책임자가 저만치서 반갑게 반겨주면서 한국팀이 작업할 곳으로 바로 안내해 준다. 국제행사에 의전도 개막식도 없다. 프랑스팀이 우리를 기다렸다면서 반겨준다. 출발 전 코디네이터가 몇 마디 일러준 대로 매너를 지켜 “Hello! Nice to meet you”라고 자신 있게 외쳤다. 아뿔사! 못 알아듣는다. 듣던 대로 프랑스 사람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구나.
오스트리아 관계자(헬뮤트)는 프랑스와 한 팀을 이뤄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주제는 자유로이 선정하고 작품의 의미가 중요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가 버린다. 필요한 연장은 옆에 있다면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진중하고 겸손하고 노련한 사람이었다.
#방사탑 축조의 쌓기 기법
프랑스 리더(프레데릭)는 프랑스 돌학교의 선생님이고 돌학교 학생들 14명을 데리고 행사에 참여했다면서 학교 자랑이 대단하다. 돌담축조에 대한 본인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언어에 기죽어 있는데, 더 기죽게 만들고 있다. 속으로, 석공끼리는 망치질 몇 번에 서열이 정해지는데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두고 보자.
논의 끝에 제주의 돌하르방과 방사탑을 만들기로 결정(3일)하고 기초작업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좌충우돌이다. 확실한 리더가 없으니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 대화가 되지 않으니 상대를 설득하려고 바디랭귀지를 동원해 설득에 최선을 다한다.
늦게 나타난 제주돌담보전회 이사장은 저만치에서 망치로 돌을 가공하고 있다. 그의 망치 소리에 조용해진다. 모여들어 망치질을 지켜본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서열이 정해진 듯하다. 여기서도 K-돌담의 위력이!

오스트리아 메쌓기는 바른층쌓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돌이 결로 쪼개지는 성질을 가진 편석이라 결의 반대로 가공이 힘들어 그런 것 같다. 흐튼층 메쌓기도 있을법한데 보이지 않는다. 돌의 특성이 돌담축조에 있어 바른층쌓기를 정착하게 만든 것 같다. 제주 방사탑과 유사한 탑이 근처에 있는데 바른층 쌓기로 되어있다.
우리는 제주의 향기가 느껴지는 흐튼층 쌓기 기법으로 방사탑을 축조하기로 했다. 반대하던 프레데릭도 한번 도전해 보자고 적극적이다. 중간중간 심석을 넣는 기술적 대화를 하면서, 돌로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아! 생면부지의 석공들이 모여 부딧치며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구나.
#유럽 석공 연장(도구)의 기능과 의미
무슨 연장(도구)이 이리 투박한지 우리 참가자는 해머(큰 둥근 메)를 들 수가 없다.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망치 자루는 너무 짧고 일자에 꼿꼿하다. 한국의 연장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연장의 끝이 뭉퉁해 돌을 때릴 때마다 위험해 보인다.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궁금하다. 한국 ‘석공 도구의 지식과 기술’을 발표할 때 어떤 반응일지 궁금해진다.

#‘석공 도구의 지식과 기술’ 발표와 시연
이번 석공 워크숍에는 16개국(등재국 포함)에서 90여 명의 석공이 참석했다. 추가로 원데이로 방문할 석공들도 있다고 한다. 전체 4그룹으로 나누어 본행사 메인인 범선(돛단배)과 야외 바비큐장, 돌벤치, 방사탑, 하르방으로 돌작품을 만들고 있다. 서로가 돌아가면서 방문해 작품의 설명과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가고 있다.
‘석공 도구의 지식과 기술’에 대한 현장 발표와 시연에 질문이 쏟아진다. 왜 망치자루가 휘었는지? 메(큰 둥근)의 끝에 날이 선 이유가 뭔지? 정의 끝이 왜 뾰쪽하지 않은지? 등 정말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발표한 도구(연장)가 등재 대표목록에 관심의 대상이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돌과 조경은 함께 해야 빛이 난다
돌은 혼자서 그 자태를 뽐낼 수 없다. 와흘메밀마을 밭담 옆에 메밀꽃이 있듯이 돌은 옆에 조연이 있어야 빛난다. 그것이 조경이다. 돌학교와 조경학교가 함께 있는 이유인 것 같다.
석공학교와 조경학교는 공원처럼 가꾸어지고 있다. 산언저리에 학생들의 작품이 기록으로 남아 작품이 되고, 기록이 되고, 역사로 남는다. 세월이 지나면서 미학이 되고 경관이 되는 것 같다.
실내 교육장 규모가 대략 400평 규모로 대단하다. 전천후 교육이 가능하도록 시설이 되어있고 파트별 교육이 가능하도록 자동 칸막이 시설도 보인다. 기숙사는 당연히 제공된다. 기자재에 페이로더, 굴삭기도 포함되어 있다. 돌담 쌓는 교육뿐만 아니라 본인이 원한다면 장비 사용법도 가르친단다.

오스트리아 의무교육과정 중 미테슐레(Mittelschule) 과정에서 상급교육 과정으로 갈 것인지 직업교육 과정으로 갈 것인지 결정한다고 한다. 취업준비 학교는 현장실무를 익히는데 주력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부 무상교육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16~17세에 직업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령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적성을 발굴해 직업전선에 빨리 진출함으로 나라에 이바지하는 건 아닐까.
#“석공 워크숍은 국가별 석공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진정한 민간외교 활동”
워크숍 4일 차 랑엔로이스 시장(Mayor Langenlois)이 우리 스테이션을 찾아왔다. 동양에서 와서 그런지 호기심이 많다. 하르방의 유례와 방사탑의 의미에 대해 상세히 질문한다. 역시 동양의 문화가 유럽에서는 생경한 모양이다.
폐막행사는 범선의 진수식과 만찬으로 이어졌다. 주최 측에서 한국을 배려해 랑엔로이스 시장과 유네스코 오스트리아위원회 사무총장, 제주돌담보전회 이사장과 함께 진수식의 하이라이트인 돛대에 와인을 매달아 터트리는 주빈이 되었다. 와인이 터지면서 박수갈채로 석공 워크숍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특히 이번 국제학술세미나와 석공 워크숍은 별도 개막식도 없었고, 관(官)의 축사도 없는 심지어 현수막 하나 볼 수 없는 순수한 민간행사였다. 행사 마지막 날에서야 시장이 참석해서 석공들이 함께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둘러보며 고생했다고 격려해주고 연회를 베풀면서 간단한 인사말로 행사를 마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남은 것은 석공끼리 뜨거운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이다. 헤어짐이 아쉬워 작품으로 만든 화덕에서 바비큐 파티가 진행됐다. 주최 측의 섬세하고 노련한 배려로 보인다.
때로는 다른 의견으로 부딪치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저녁마다 와인 파티에 토크로 서로의 기술을 이야기하며 뜨거운 우정을 나눴다. 언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석공 워크숍의 가장 큰 목적은 나라별 석공끼리의 커뮤니티 형성인 것 같다. 이별의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포옹하며 헤어지지 못하는 여운을 남기면서 서로가 내년을 기약한다.
실제 석공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의 약 40%가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여했고, 사실 이들이 보이지 않는 실세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석공들의 민간교류를 통해 진정성을 확인하면서 제주도가 추진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한발 다가서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참석한 대다수 석공들의 나라인 유럽은 상당히 보수적인 나라들이다. 천천히,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지만 ‘제주 돌담’ 나아가 ‘K-돌담의 세계화’ 즉, 유네스코 등재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느꼈다. 더불어 세계 석공들 간의 끈끈한 유대 형성은 물론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수많은 협의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목도하며, 앞으로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짐하게 됐다.

#전승과 계승에 대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고자 하는 핵심은 석공이 돌을 쌓는 ‘기술과 지식’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확장 등재를 추진하는 지금, 우리는 고등학교 또는 전문대학에 정식 석공학과가 개설되어 사라져가는 석조문화의 대를 이을 인재 양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돌담보전회에서 제주도교육청에 제안했으나, 아직은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확장 등재에 목맬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와 등재 이후의 고민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돌학교와 프랑스의 돌학교는 국비로 운영되면서 정식 직업전문학교로서 미래의 장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프랑스 돌학교는 학생들을 국제 석조 관련 행사에 적극 참여시키면서 다양한 기회를 주면서 가치를 부여해주고 있다. 프랑스가 문화강국인 이유를 여기서 느끼고 체험한다. / 석장 김종승(동국대학교 대학원(문화재학과) 석사 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