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95) 생존 희생자와 6~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까지 총 21명 무죄

무죄 선고 직후 웃음을 되찾은 강순주 할아버지. ⓒ제주의소리
무죄 선고 직후 웃음을 되찾은 강순주 할아버지. ⓒ제주의소리

경찰영웅 고(故) 문형순 서장이 제주도민 학살 명령을 거부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강순주(94) 할아버지의 명예가 74년만에 회복됐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방선옥 부장, 류지원.정혜미)는 30일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일반재판 직권재심 총 3건을 병합, 대상자 21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상자 모두 제주4.3 희생자로, 이날 명예가 회복된 희생자 중에는 강순주 할아버지가 포함됐다. 

1929년 11월생인 강 할아버지는 호적에는 1932년 9월생으로 올라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일본으로 넘어가 생활하던 강 할아버지는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자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가족이 살던 가시리로 돌아온 강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사는데, 살고 싶으면 도망가야 한다는 마을 주민들 말에 영문도 모른 채 숨어 지냈다. 

1948년 19살의 나이로 군경 토벌대에 붙잡힌 강 할아버지는 모진 고문을 당했다. 토벌대는 강 할아버지를 무장대로 몰며 각종 고문을 했지만, 강 할아버지는 “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버텼다. 

토벌대가 총구를 겨눠 강 할아버지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했음에도 강 할아버지는 “하지 않은 일을 인정할 수 없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끝내 거짓 진술을 거부했다. 

계속된 고문에도 강 할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자, 토벌대는 “이미 증언을 확보했다”며 강 할아버지 이웃 마을 사람 3명과 대면시키기까지 했다. 

강 할아버지를 만난 이웃 마을 사람들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고문에 못이겨 허위 자백하는 과정에 강 할아버지를 언급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며칠 뒤 강 할아버지는 풀려났는데, 나중에야 자신이 국가보안법 전과자가 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에 처해진 기록이 남으면서 강 할아버지는 평생을 ‘빨갱이’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풀려난 이후 6.25 한국전쟁에 따른 예비검속으로 강 할아버지는 또 벼랑 끝에 섰다. 

전쟁 때 북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추측만으로 벌어진 예비검속은 제주 곳곳에서 자행됐는데, 1950년 성산포경찰서 문형순 서장은 김두찬 해군중령의 총살 명령에 대해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이라고 학살 명령을 거부했다. 

경찰 영웅 문형순 서장의 학살 명령 거부로 목숨을 부지한 강 할아버지는 ‘빨갱이’라는 시선을 벗어나고자 1952년 국군에 입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강 할아버지는 매년 문형순 서장 기일에 조화를 보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날 법정에서 강 할아버지는 울먹이면서 결백을 호소했다. 

강 할아버지는 “어릴 때 일본에 넘어가다보니 우리나라 말도 서툰 상황에서 4.3에 휘말렸다. 토벌대가 지나간 자리에 사람들이 죽어있어 겁이 나 도망갔다가 잡혔는데,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손도장(허위자백)을 찍으라고 강요했지만, 계속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를 받다가 풀려났는데, 나중에 보니까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형벌을 받은 이유를 모르겠다. 재판을 받아본 적도 없다”며 “예비검속으로 죽을 뻔 했지만, 문형순 서장 덕에 살았다. 차라리 군대에서 죽으면 결백이 증명되지 않을까 싶었다. 잘못한 것이 없었기에 세상을 원망했다”고 울먹였다.

합동수행단은 이날 강 할아버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고, 변호인도 강 할아버지의 무죄를 대변했다. 

양측의 의견을 종합한 재판부도 강 할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강 할아버지와 함께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6~7차(각 10명) 일반재판 직권재심 20명도 함께 누명을 벗었다. 

20명은 1947~1950년 사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를 뒤집어 쓴 4.3희생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3.1절 발포사건 진상규명과 남한 단독으로 진행된 5.10총선거 반대 등의 목소리를 내다 이념 광풍에 휘말린 희생자다. 

무죄 선고 후 재판장인 방선옥 부장판사는 “무죄 선고로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 편안한 삶을 살길 바란다”고 4.3피해자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날까지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일반재판 4.3피해자는 누적 71명이다. 이와 별도로 군사재판 직권재심으로 1332명의 명예도 회복됐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3년 10월31일)
강상두, 고을송, 김인수, 강문택, 장한성, 현봉하, 김덕용, 서종권, 손경현, 장춘자

41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10월31일)
고용전, 임달부, 송공삼, 오창순, 문종각, 김성천, 김치민, 김성길, 김기규, 김형주, 고재찬, 양만학, 김순택, 양지순, 김혁조, 김두인, 이대성, 조두규, 현상시, 진경만, 오영백, 양태후, 홍용표, 김창해, 김봉수, 강군화, 강조정, 부윤호, 안최빈, 김윤석

42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11월28일)
김안국, 고두석, 정두영, 백우형, 김희만, 김병호, 김봉수, 장성학, 김태경, 이근우, 현귀보, 김수호, 오국보, 박두환, 부성우, 채평호, 강용생, 이완진, 현완일, 문두홍, 고의학, 강위경, 천두팔, 양승후, 김기풍, 김병용, 좌구형, 강여규, 양재섭, 김대길

43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11월28일)
현두생, 강한규, 고태호, 김기남, 김봉흡, 김재생, 이요심, 한일봉, 양근오, 고태규, 한칭목, 양의호, 송갑생, 송신생, 김동안, 부영호, 허달희, 양재희, 강원효, 김윤명, 홍남기, 강태평, 김자학, 박성찬, 김창영, 오순보, 김봉호, 허남홍, 허남섭, 허남익

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3년 12월12일)
이상지, 김오봉, 김병봉, 강병칠, 오흥수, 홍유아, 김만규, 임재옥, 고인성, 황덕칠

44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월16일)
고익중, 김경완, 고기형, 문창하, 김봉집, 김병임, 고재남, 홍민삼, 양경택, 오영홍, 하용현, 양대원, 김철호, 이은선, 오의창, 부원옥, 안두선, 오봉두, 오민선, 김원오, 김양기, 강덕용, 고자은, 김병욱, 오성도, 윤영주, 안응빈, 이무형, 이근생, 오재두

4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월16일)
김성탁, 양중빈, 김병주, 강오규, 홍일봉, 김원방, 양응휴, 박병규, 강성봉, 신형택, 김은권, 박상책, 김안등, 부치량, 신방수, 최봉규, 안길수, 문원봉, 양태교, 이영종, 김봉삼, 고승주, 최봉우, 윤상희, 현영호, 이성옥, 고인경, 박종호, 이맹사, 김공남

희생자 미신고 생존자 직권재심(2024년 2월6일)
오모씨(익명)

46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4월30일)
박화민, 박화신, 김익중, 허두현, 임태수, 김광필, 조승택, 문찬석, 정영필, 진길원, 김용선, 김용식, 송문옥, 부두천, 한봉수, 오한진, 김만거, 고기진, 오병현, 오병훈, 김공수, 양응식, 김현택, 김균봉, 부행규, 홍운표, 양용화, 양일중, 이기춘, 문인택

6~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일반재판 피해 생존 희생자 직권재심(2024년 4월30일)
강순주(생존자), 황희겸, 황창만, 오우경, 김봉생, 임형기, 이완근, 강태순, 강귀영, 양경호, 양한병, 조봉천, 신원보, 문경옥, 현채홍, 김병기, 박영호, 강원주, 한문현, 부해성, 오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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