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정신건강에 대해 말하다②
재난은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와 삶의 터전을 뒤흔든다. 지진, 홍수,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뿐 아니라 대형 화재, 산업재해, 감염병 등 다양한 재난 상황은 개인과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준다. 이때 가장 간과되기 쉬운 것이 바로 정신건강이다. 신체적 외상이 낫고 건물이 복구된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 이러한 상처는 신체적 상처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기 쉽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사회적 기능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 무기력감, 수면장애 등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경험한다. 특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재난 이후에도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으며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 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정신적 피해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장기적인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사용장애와 같은 문제로 악화될 수 있으며, 이는 개인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에 걸쳐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초래한다.
특히 재난 직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 따라서 재난 직후 정신건강 관리에서 중요한 부분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난 현장이나 지역사회 내에서 심리적 응급처치(PFA)와 같은 초기 심리지원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사람들이 보다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난을 경험한 이후 정신적 회복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첫 단계는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서적 지지를 받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충분한 휴식과 수면,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 등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심각한 정신적 어려움이 지속될 경우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결국 재난 이후 정신적 회복은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공공의 지원이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 또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확산할 때, 피해자들은 용기 내어 도움을 요청하고, 보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재난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힘은 함께하는 공동체의 따뜻한 관심과 지지라는 점을 기억하며,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한 재난 대응 역량을 키워나가길 기대한다. / 제주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 정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