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정신건강에 대해 말하다] ⑤ 오늘 하루도 수고한 당신, 폭삭 속았수다

정영은 제주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 ⓒ제주의소리
정영은 제주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 ⓒ제주의소리

최근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제주어 “폭삭 속았수다”는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에게 “수고 많았다”, “당신의 노고를 안다”는 따뜻한 위로의 인사다. 사실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무겁고 외로운 짐을 안고 있는 이들이 많다.

제주는 ‘치유의 섬’, ‘평화의 섬’이라 불리지만, 통계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제주지역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7.3명으로 전국 평균(22.7명)을 크게 웃돌며 전국 네 번째로 높았다. 이 숫자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누군가의 지친 하루,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그리고 남겨진 가족과 이웃의 깊은 상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단절, 사회적 고립, 정신적 고통이 겹치면 삶은 버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작은 신호라도 제때 알아채고 손을 내밀어 준다면, 소중한 생명은 지켜질 수 있다. “죽고 싶다”는 말, 극심한 절망감, 사회적 고립은 분명한 위험 신호다. 이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전문가와 연결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내일은 바뀔 수 있다.

매년 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전 세계가 자살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생명 존중을 위해 함께 대응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제주 역시 다양한 캠페인과 기념식을 통해 도민들과 생명의 소중함을 나누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설 자살예방센터는 ‘자살위험 없는 Safety 제주’를 목표로, 생명안전망을 강화하고, 농약·가스·다리 난간 등 위험 수단 접근성을 개선하며,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을 지원하는 사후관리도 이어가고 있다. 또한 1인 가구, 청소년, 실직자·구직자 등 다양한 대상자를 위한 맞춤형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경찰과 소방 등 현장 인력과 협력해 지역사회의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은 누군가가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지켜주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살기 좋은 제주는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기 순간에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누구도 고립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회적 연대가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의 섬이 될 수 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한 당신, “폭삭 속았수다.” 이 짧은 위로가 누군가의 내일을 지켜내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제주는 치유의 섬을 넘어, 모두의 생명을 존중하는 생명의 섬으로 빛나야 한다. 우리 모두가 작은 관심과 연대를 실천하는 다리가 될 때, 그 길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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