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 제주]③ 단순 인건비 지원 아닌 ‘인력풀’ 쌓는 사업
콘텐츠 인력풀 → 신규 채용 → 사업 확장 → 산업 활성화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제주의소리<br>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제주의소리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인사만사(人事萬事)’.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공자의 말처럼 모든 일에 있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시대를 떠나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제주 콘텐츠 산업은 사람이 없어 ‘인사’ 위기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채용계획이 있는 기업들은 임금 부담을 이겨내더라도 해당 직무 인력풀(Pool)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기업에 맞는 인력을 채용해 사업을 키워나가고 싶지만, 정작 지역인재가 없는 현실이다. 

제주의 자원을 직접 활용하거나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 영화 같은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며 ‘절호의 기회’를 마주했지만, 이를 잡아챌 제주의 인재가 부족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 같은 위기 속 지속가능한 제주 콘텐츠 산업을 위해 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고 청년에게는 교통비와 교육 등 기회를 제공하는 ‘빌드업(Build-up)’ 지원사업이 올해 첫발을 뗐다.

표면적으로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라 ‘선심성’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년들이 경험을 쌓고 인력풀에 포함될 수 있도록 ‘만사’의 주춧돌을 쌓는 사업이다. 

기업은 인력을 채용해 사업을 확장하고 청년은 경험을 쌓아 콘텐츠 분야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는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사업이지만, 야심 찬 목표와 달리 첫해 예산은 삭감됐다. 

지난 4월 제주도의회 임시회에서는 생태계를 만들 절호의 기회라는 호소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주 콘텐츠 산업은 힘겹다. 기업은 경력자를 선호하지만, 청년들은 실무 경험이 부족해 취업하기 어렵고 결국 제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취업하려니 경력이 필요하다 하고, 경력을 쌓으려니 마땅한 곳이 없어 제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연결고리. 여기서 인건비를 지원하는 것은 이 고리를 풀어내는 일이다. 

제주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한 결과 도내 콘텐츠 기업들은 채용을 원하지만 임금 부담과 인력 부족이 어려운 점이라고 밝혔다.&nbsp;ⓒ제주의소리
제주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한 결과 도내 콘텐츠 기업들은 채용을 원하지만 임금 부담과 인력 부족이 어려운 점이라고 밝혔다. ⓒ제주의소리

빌드업 지원을 받기 위해 기업은 정규직 형태로 청년을 채용해야 한다. 지원이 끊겼다고 임의로 해고할 수 없는 것. 물론 지원받은 기업은 당연히 고용을 유지하고 나아가 그 효과를 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 효과는 현재 지원을 받고 있는 기업에서 엿볼 수 있었다.

지난 8월 빌드업 지원을 통해 청년들을 채용한 콘텐츠 기업 ‘아이러니’와 ‘쪼근며느리’는 채용 3개월이 된 시점, 벌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두 기업 대표는 “지금까지 받은 지원사업 중 가장 효과가 큰 사업”이라며 “사업 성장을 위한 확실한 발판이 된다”고 강조했다. 

제주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10월 25일부터 11월 29일까지 5주간 지역 콘텐츠 산업체를 대상으로 채용 수요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95곳 중 80곳(84%)이 채용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정작 채용은 주저하는 데, 그 이유로 ‘전문인력 부족’과 ‘임금 부담’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인력 채용에 있어 예상되는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문항에 1순위는 ‘임금 부담’ 36%, 2순위는 ‘콘텐츠 관련 인력풀 부족’ 23%, 3순위는 ‘지원자 경력 부족’ 17%였다. 

인력풀이 없는 데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없는 ‘인사’ 문제가 40%에 달한다는 뜻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여기서 등장한 사업이 빌드업 지원사업이다. 단순한 선심성 지원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 생태계 인력풀을 쌓아나가는 과정이다.

결국 기업이 원하는. 인력풀이 마련돼야 콘텐츠 산업 발전도 이룰 수 있다. 인건비 중심 지원사업으로 보여도 결국은 콘텐츠 분야 인재를 육성하는 길인 것이다. 나아가 청년 인구를 제주로 끌어들이는 가능성도 엿보인다. 

‘아이러니’와 ‘쪼근며느리’에 채용된 2명 모두 타지역에서 제주로 내려온 이주민이다. 제주에 연고가 없지만, 빌드업 지원을 받은 기업의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이다. 최종 합격한 이들은 각자 기업에서 제주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왜 빌드업 지원사업이 필요하느냐라는 질문의 답은 ‘산업 생태계’에 있다.

현재 제주콘텐츠진흥원은 올해 약 19억원을 투입해 총 78개 기업을 선정, 이 가운데 64개 기업이 114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모두 콘텐츠 산업 경험을 쌓아나가는 중이다. 

“다른 지원사업도 있지만 체감 효과가 가장 큰 사업이 빌드업입니다. 단순한 인건비 지원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얻은 거죠.” 실제 효과가 어떤지 묻는 질문에 대한 기업 대표의 답변에서 ‘빌드업’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김양보 당시 도 문화체육교육국장은 도의회에서 “넷플릭스 폭싹 속앗수다처럼 제주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 자원이 있다”며 “청년 콘텐츠 산업 종사자 수가 해마다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단순한 지원에 그치지 않도록 사후관리가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제주 콘텐츠 산업 규모를 키우고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제주콘텐츠진흥원이 내년 지원 규모를 확대할 방침을 세운 가운데 제주의 콘텐츠 산업의 미래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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