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52년만에 벌초 '한국판 쉰들러' 故문형순 서장
경찰 52년만에 벌초 '한국판 쉰들러' 故문형순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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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오등동 산11-1번지 제주평안도공동묘지 북서측 소나무 아래 자리잡은 故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묘.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추석특집] 경찰, 경찰영웅 문 서장 묘 첫 벌초..."항일 독립운동가이자 한국판 쉰들러"  

4년 만에 다시 찾았다. 기억을 되짚어 제주시 오등동의 한 사찰을 지나 흙길을 따라 약 500m 가량 이동하니 시선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공동묘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경사로를 따라 다시 약 20m를 내러가니 ‘제주평안도공동묘지’라는 안내판이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 뒤로 가지런히 정렬된 평안도 출신 인사 묘지 113기가 시선을 끌었다. 

묘지 서측에 우뚝 솟은 고목으로 눈을 돌렸다. 거대한 소나무 밑에 어김없이 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경찰 영웅으로 선정된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이다.

경찰청은 올해 8월 경찰영웅 선정위원회를 열어 2018년 경찰 영웅에 문 서장을 선정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경찰정신에 귀감이 되는 전사·순직자를 경찰 영웅으로 선정하고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제주지방경찰청 지도부가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음식과 술을 준비해 제를 올렸다. 이상철 제주지방경찰청장도 직접 참석해 호미(낫)를 잡고 벌초에 나섰다.

이 청장은 “4.3과 관련해 경찰은 아픈 기억이 많다. 그런 역사 속에서도 훌륭한 일을 한 선배 경찰관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후배 경찰관으로서 이를 기억하고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 이상철 제주지방경찰청장이 18일 제주평안도공동묘지를 찾아 경찰 영웅으로 선정된 故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묘에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제주지방경찰청장 소속 경찰관들이 18일 제주평안도공동묘지를 찾아 경찰 영웅으로 선정된 故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묘에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문 서장은 평안남도 안주 태생이다.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단체인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했다. 국민부는 남만주 일대 한인을 바탕으로 준 자치를 실시한 곳이다.

국민부 중앙호위대장을 맡은 문 서장은 조선혁명군의 지원을 통해 무장투쟁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9년에는 조선혁명당 중앙당부 중앙위원 23명의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 광풍 속에 경찰 신분으로 제주로 향했다. 1949년 1월에는 모슬포경찰서 초대서장(경감)에 올라 그해 11월까지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군경은 대정읍 하모리 좌익총책을 잡아 관련자 100여명의 명단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문 서장은 다수가 처형될 것을 우려해 조남수 목사와 김남원 민보단장과 함께 자수를 권했다.

세 사람의 노력으로 하모리 마을 주민 대부분이 목숨을 구했다. 문 서장이 마을주민들을 함부로 잡아들이는 것을 막아서며 마을은 다른 곳과 비교해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1949년 11월 성산포경찰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문 서장은 또다시 주민들의 편에 섰다.

▲ 이상철 제주지방경찰청장(왼쪽)과 노현규 평안남도 제주도민회장(오른쪽)이 18일 故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묘에서 벌초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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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철 제주지방경찰청장(오른쪽 첫번째)과 노현규 평안남도 제주도민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8일 故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묘에서 벌초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6.25 당시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검거하라는 이른바 예비검속이 시작됐지만, 문 서장은 총살 명령에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이라며 맞섰다.

읍면별로 수 백여 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성산포경찰서 관할지역 예비검속 희생자는 6명에 불과했다. 지금도 이 이야기는 성산 마을에서 구두로 전해지고 있다.

1953년 9월15일 퇴직한 문 서장은 제주시 무근성에서 쌀 배급소를 운영하며 가난과 싸웠다. 지금처럼 연금도 없던 시절에 홀로 생활하며 후손도 보지 못했다. 

장사를 접은 후에는 당시 대한극장(현대극장의 전신)에서 매표원으로 일을 하다 1966년 6월20일 제주도립병원에서 향년 70세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제를 지낼 자손도 없어 평안도민회가 나섰다. 문 서장을 당시 공동묘지였던 제주시 건입동에 안장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문 서장의 비석을 둔기로 두 동강 내는 일이 벌어졌다.

평안도민회는 묘비를 다시 만들고 새로운 평안도민회 공동묘지인 현 제주대학교 자리로 옮겼다. 1977년 제주대 아라캠퍼스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자리에 최종적으로 터를 잡았다.

▲ 제주지방경찰청장 소속 경찰관들이 18일 제주평안도공동묘지를 찾아 경찰 영웅으로 선정된 故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묘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비석에는 ‘一平生 抗日 獨立鬪士 大韓民國 樹立 後 摹瑟浦 城山浦 警察署長 歷任'(일평생 항일 독립투사 대한민국 수립 후 모슬포 성산포 경찰서장 역임'이라고 쓰여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묘비에는 이끼가 가득했다. 반세기 비바람을 이겨내느라 묘비 곳곳에 상처가 역력했다. 비석의 음각 비문은 색이 바래 글자를 한눈에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비석 정면에는 故 南平文公亨淳之墓(남평문공형순지묘)라고 적혀있다. 옆면에 '西紀 1897年 1月4日 平南 安州(평남 안주) 出生. 1966年 6月20日 死'이 그의 일생을 말해줬다.

그 옆에는 ‘一平生 抗日 獨立鬪士 大韓民國 樹立 後 摹瑟浦 城山浦 警察署長 歷任'(일평생 항일 독립투사 대한민국 수립 후 모슬포 성산포 경찰서장 역임'이라고 쓰여 있다.

묘지를 관리하는 노현규 평안남도 제주도민회장은 “113기 중 12기가 무연고 묘다. 문 서장의 묘도 후손들이 없어 50년 넘게 도민회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회장은 “문 서장은 항일운동에 힘쓰고 제주에서도 4.3의 광풍 속에 무고한 사람들을 지킨 분”이라며 “이후 4.3당시 경찰이라는 이유로 비석이 훼손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뒤늦게나마 경찰 영웅으로 선정돼 올바른 역사가 알려지길 바란다”며 “후손들도 문 서장의 희생정신을 배우며 지켜나가겠다. 국가도 이분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 이상철 제주지방경찰청장이 18일 제주평안도공동묘지를 찾아 경찰 영웅으로 선정된 故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묘에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제주시 오등동 산11-1번지 제주평안도공동묘지 북서측 소나무 아래에 故 문형순(文亨淳.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묘가 위치해 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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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 2021-06-24 17:02:13
항일독립투사가 해방 후 어떻게 경찰간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일제시대 때부터 경찰이었으면 독립투사 출신이 아닐 것이고, 독립투사가 해방.후 경찰간부가 되었다는 것도 의문시 된다. 그렇 수도 있겠지만.....입직경위는 드러나야 할 것이다.
223.***.***.129

영웅 2018-09-22 19:34:23
상부의 총살 명령에 부당하므로 불 이행하며 수백명의 주민을 살린 진정한 경찰 영웅이네요ㆍ
4.3공원에 모셔 국민들에게 이런 공덕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59.***.***.236

충혼묘지나 4.3기념관으로 2018-09-22 13:05:47
이런 휼륭한분을
국립묘지나
제주4.3공원으로
옮겨
국가에서
관리함이
옳을듯 합니다.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