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국립 4.3트라우마센터] ① 5월부터 국립 분원으로 신설
국비-도비 운영비 공동부담 등 불완전한 운영 기반 개선 목소리

2020년 5월부터 제주4.3 피해자들을 위해 문을 연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시범운영을 끝내고,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제주 분원으로 새 출발한다. 그러나 국립 기관 신설이 무색하게 예산, 규모, 입지 등에 있어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제주의소리]는 제주 분원 출범에 맞춰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 편집자 주


“제주4.3사건, 5.18민주화항쟁 등 지난 과거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사건의 진상규명과 보상에 관한 개별법이 시행되어 보상이나 명예회복이 이루어졌지만 이러한 국가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관한 지원대책은 미흡한 실정임. … 이에 국가폭력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 가족 등의 트라우마와 이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하여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를 설립하는 법을 제정하여 잘못된 과거의 상처를 딛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임.”
-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트라우마치유센터법)
제안이유 가운데 일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trauma) 치유를 지원하기 위한 트라우마치유센터법은 순탄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제20대 국회(2016~2020) 종료를 코앞에 둔 2019년 8월에야 법안이 제안됐지만, 소관 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 문턱 조차 넘지 못하고 제20대 국회가 끝나면서 함께 폐기됐다.

다만, 다음 제21대 국회에서는 2020년 9월 일찌감치 법안이 제안되면서 절차를 밟아나갔고, 2021년 11월 본회의를 통과하고 한 달 뒤인 12월에 정부 공포 절차까지 이뤄진다. 2022년 6월에는 시행령도 제정됐다.

제주4.3트라우마센터는 트라우마치유센터법이 21대 국회에서 제안되기 전인 2020년 5월에 문을 열었다. 당시 제주4.3평화재단은 공식 보도자료에서 “트라우마센터는 국립 트라우마센터 설립이 법제화될 때까지 광주와 제주 2곳에서 시범 운영되며, 제주에서는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 아래 제주4.3평화재단이 운영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5월부터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제주 분원으로 탈바꿈한다. / 사진=4.3트라우마센터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5월부터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제주 분원으로 탈바꿈한다. / 사진=4.3트라우마센터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에 힘써온 4.3트라우마센터  

제주4.3트라우마센터는 비록 시범 운영이지만, 지난 3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맞이방 운영 ▲심리상담 ▲방문형 사례관리 ▲마음치유 프로그램 ▲신체치유 프로그램 ▲찾아가는 읍면동 치유 프로그램 ▲4.3트라우마센터 전국학술대회 ▲강정마을 공동체 치유 프로그램까지, 제주도민들에게 드리운 국가폭력의 그늘을 밝히는데 힘써왔다.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연 2020년은 6개월 남짓 운영에도 불구하고 이용 건수는 1만699건을 기록했다. 이후 1만7086건(2021년), 1만6539건(2022년), 1만7670건(2023년) 등 많은 도민들이 센터를 이용하면서 제 역할을 소화했다. 코로나19가 정점으로 유행한 시기임을 감안해도 고무적인 활동이다.

제주4.3트라우마센터 등록자 현황을 보면 총 1472명으로 유족(967명)이 가장 많고, 그 뒤로 ▲희생자의 며느리(216명) ▲강정마을 주민(132명) ▲일반(4.3관련자, 88명) ▲생존희생자(68명) ▲간첩조작사건피해자(1명) 순이다. 

4.3트라우마 등 치유대상자를 살펴보면 ▲4.3유족(1만5565명) ▲희생자의 며느리(3251명) ▲생존희생자 후유장애인(84명) ▲생존희생자 수형인(19명)까지 1만8920명에 달한다. 여기에 강정마을 주민(2170명)까지 포함하면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가야할 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셈이다.

제주4.3트라우마센터 김성한 부센터장은 2023년 성과보고서에서 “4.3트라우마센터의 등록자와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치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면서 “이에 센터와의 접근성이 낮은 지역은 직접 찾아가는 치유 서비스를 확대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정영은 센터장 역시 같은 성과보고서에서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들의 트라우마 치유와 사회적 치유 모델을 만들고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의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4.3평화재단이나 제주도 차원이 아닌 국가 기관으로서의 운영을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올해 5월부터 시범 운영을 끝내고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를 신규 출범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새 국립 센터의 본원으로, 제주4.3트라우마센터는 분원으로 탈바꿈한다. 5월 31일을 시범 사업 종료 시점으로 잡고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지만, 공식적으로는 5월 1일부터 국립 기관이 되는 셈이다.

국립 기관으로 체급 올라갔는데, 정작 내실은 불안정?

제주도(제주4.3평화재단)에서 정부(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으로 체급이 올라가면서, 새 국립 기관이 제주에 생기는 셈이지만 정작 4.3유족들 사이에서는 기대감보다는 낙담하는 분위기다. 운영 예산이 기존 시범 운영 규모에서 벗어나기 요원하다는 우려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제주4.3트라우마센터 올해 예산을 17억원으로 잡고 전액 국비로 충당할 예정이었지만, 기획재정부가 개입해 예산을 깎고, 그마저도 국비와 도비를 절반씩 부담하도록 수정했다. 국립 기관에 무슨 도비가 투입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트라우마치유센터법 제18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출연 또는 보조할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올해 제주4.3트라우마센터 예산은 국비와 도비 절반씩 합쳐 12억6000만원이다. 인원은 센터장 포함 12명. 기대했던 센터 인력 확대는 커녕, 운영비 조차 온전하게 책정되지 못하면서 9월 전후로 활동을 멈출 위기에 놓여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시범 운영보다 못한 국립 기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폭력 피해자 숫자는 제주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제주가 분원, 광주가 본원인 기형적인 구조 ▲지난 3년간 4.3트라우마센터 시범 운영 책임진 인력에 대한 고용 승계 ▲정부 고위공직자 출신들의 낙하산 임명 우려 등 각종 문제들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가폭력트라우마센터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사회통합지원과 관계자는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센터는 기존 시범 운영 때와 차별화돼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2025년 운영 예산은 100% 국비 부담으로 요청할 계획”이라면서 “기획재정부와의 논의 등으로 한 번에 개선을 이루긴 어려워보이지만 점진적으로 센터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9월 운영비 고갈에 대해서는 “제주도와 원활하게 매칭이 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제주 국회의원 전원 “트라우마센터 제주 분원? 안된다”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주요 부처가 이번 사안에 연관돼 있는 만큼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국회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은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센터 문제에 대해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제22대 국회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위성곤 의원은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우선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분원이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센터 예산의 절반을 도비로 투입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라면서 “지난해 예결위에서 제주 분원이 아닌 독립된 형태로 만들어야 하며, 도비 투입 역시 안된다고 지적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끝까지 동의를 하지 않아 현재 형태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처리하지 않으면 예산을 삭감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업 폐기 우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처 알지 못한 직원 고용 승계 문제를 포함해서 트라우마센터 문제를 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필요하다면 법률 개정을 통해서 확실히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한규 의원도 “제주 분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데 저 역시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트라우마센터가 본원, 분원 형태로 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간단히 국립 5.18트라우마센터, 국립 4.3트라우마센터 이렇게 각각 별개로 있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국립이라면 마땅히 국가가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제주도가 다른 필요한 곳에 지원을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또한 “고용 승계 부분은 비록 법적인 의무가 없더라도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서 채용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필요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문대림 당선자 역시 “이번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주 분원 문제를 확인했다. 유족 수를 따져도 희생자 수를 따져도 제주가 분원으로 운영되는 것은 안되는 일이다. 분원이면 예산이나 인력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면서 “트라우마센터는 마땅히 이용자, 대상자들이 중심이 되는 운영이 돼야 한다. 퇴직 고위관료 같은 분들을 위한 자리가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제주지역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센터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22대 국회에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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