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국립 4.3트라우마센터] ③ 광주본원-제주분원 대신
본원 산하 각 지역센터로 체제 전환 목소리
2020년 5월부터 제주4.3 피해자들을 위해 문을 연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시범운영을 끝내고,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제주 분원으로 새 출발한다. 그러나 국립 기관 신설이 무색하게 예산, 규모, 입지 등에 있어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제주의소리]는 제주 분원 출범에 맞춰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 편집자 주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공식적으로 올해 5월부터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트라우마센터) 소속으로 승격됐지만, 실상은 격하와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라우마 치유 대상이 가장 많은 지역임에도 ‘분원’에 머물러 위상 제고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다.
올해 5월31일까지 제주와 광주 2개 지역에서 시범운영되는 트라우마센터는 공식적으로는 5월1일자로 국립 치유센터로 승격됐다.
시범운영 과정을 거쳐 광주에 트라우마센터 본원이 들어서고 제주4.3트라우마센터는 제주분원으로 운영된다.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트라우마센터 치유대상자는 국가폭력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국가폭력 등을 조사·기록하거나 피해자 지원·치유 중 트라우마를 보이는 사람 등이 포함된다.
4.3과 광주5.18 등 국가폭력 뿐만 아니라 의문사하거나 인권침해를 당한 군인 등이 치유대상자에 포함된다.
제주4.3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킨 비극적인 사건이다.
1947년 3월1일 3.1절 기념행사에 벌어진 경찰의 발포로 도민 6명이 사망한 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禁足令)이 해제될 때까지 7년6개월 넘는 기간 사망자만 2만5000명에서 3만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 수준으로, 대가족 문화가 일반적이었던 시기라서 사실상 제주의 모든 집안에 4.3 피해자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24년 5월 기준 제주4.3희생자는 1만4822명, 4.3유족은 11만494명에 달한다. 희생자와 유족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에서 결정됐다.
7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생존 4.3희생자는 몇명 남지 않았고, 아직도 수많은 유족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 나이에 목격한 학살의 현장과 수십년 이어진 ‘빨갱이 가족’이라는 차가운 시선 등은 4.3유족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안겼다.
올해 3월 기준 제주지역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약 12만명인데, 4.3과 관련된 치유대상자(희생자, 유족 등)만 1만8000명에 이를 정도다.
이에 더해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 주민 약 2000명도 트라우마센터 치유 대상자에 포함돼 제주분원 치유 대상자만 2만명에 이른다.

광주5.18의 경우 민주유공자는 유족 799명을 포함해 총 4415명 정도다. 1990년 1차부터 2015년 7차까지 총 5807명이 5.18 피해 보상금을 수령했다.
광주본원보다 제주분원 치유대상자가 곱절에 이른다는 얘기다.
트라우마 치유의 핵심은 정서적 안정감이다.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관광 1번지 제주가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췄음에도 분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위상 격하와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광주본원과 제주분원으로 나뉜 것은 정치권의 역할이 컸다. 제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무관심했다는 비판도 있긴 하지만, 광주광역시 국회의원만 8명이고, 전북과 전남 각각 10명씩 합치면 호남권 국회의원만 28명에 달해 정치력에서 밀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행 트라우마센터 관련 법률상 전국 각지에 트라우마센터가 더 들어설 수도 있어 법률 개정을 통해 각 지역 트라우마센터 위상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트라우마센터 관련 법률 제6조(분원의 설치 등)에 따라 트라우마센터는 분원을 설치·지정·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됐다.
또 같은 법률 제16조(직원의 임면) 트라우마센터 원장은 사무처의 직원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도 있다. 기우일 수 있지만, 광주본원 원장이 4.3과 강정마을 등에 이해도가 낮은 사람을 제주 트라우마센터 직원으로 채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굳이 광주에 있는 본원을 제주로 옮기자는 목소리를 내 지역 갈등을 야기할 것이 아니라 법률 개정으로 분원을 지역센터로 전환해 상생하는 여건을 만들 수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트라우마센터 광주본원, 제주분원이라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트라우마센터 본원 산하에 트라우마광주센터, 트라우마제주센터 등 수평적 체계로 정비하는 구상이다.
제주분원이 광주본원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구조 대신 트라우마제주센터, 트라우마광주센터 형식으로 각자의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트라우마센터의 이름도 각 지역 상황에 맞춰 여순트라우마센터, 부마트라우마센터, 세월호트라우마센터 등의 방식을 취할 수 있다.
제주 트라우마센터 위상 제고를 위한 법률 개정을 위해서는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제주시갑 문대림, 제주시을 김한규, 서귀포시 위성곤)들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제주 국회의원 3인방은 [제주의소리]가 보도한 트라우마센터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고 밝히면서 오는 6월5월 개원하는 제22대 국회에서 노력하겠다고 거듭 약속한 바 있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단순히 비교하면 트라우마 치료대상자부터 제주와 광주의 차이가 크다. 국립 트라우마센터 제주분원은 사실상 지위 격하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광주본원, 제주분원이 아니라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위상을 제고한다. 아울러 법률 개정 시 지방비 부담 관련 조항도 삭제해 국립 기관에 맞게 국비 100%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22대 국회에서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의 법률 개정 노력을 당부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