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국립 4.3트라우마센터] ② 반쪽 짜리 국립 전락 우려
예산 동결, 시범 운영서 나아진 것 없어…제어 권한만 갖겠다?

2020년 5월부터 제주4.3 피해자들을 위해 문을 연 제주4.3트라우마센터가 시범 운영을 끝내고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제주 분원으로 새출발한다. 그러나 국립 기관 신설이 무색하게 예산, 규모, 입지 등에 있어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제주의소리]는 제주 분원 출범에 맞춰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 편집자 주


제주4.3트라우마센터 전경.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예산으로 세우고 관리함. 표준국어대사전 정의부터 그렇다. 국립(國立)이라는 수식이 붙은 만큼 예산부터 운영까지 모든 책임의 몫은 정부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시작부터 국립이란 명칭을 퇴색시키며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예산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한다. 다음 달부터 국립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제주분원 이야기다.

4.3트라우마센터는 2020년 5월 문을 열었다. 이후 2021년 12월 트라우마치유센터법이라 불리는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국립 승격 전 3년간 정부와 제주도의 지원 아래 제주4.3평화재단이 4.3트라우마센터의 운영을 맡았다.

시범운영 기간 들어간 예산, 연간 약 12억원은 정부와 제주도가 절반씩 부담했다. 4.3트라우마센터는 이 기간 연간 1만6000건을 웃도는 이용 실적을 보이며 도민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국립트라우마센터 출범을 앞두고 기대는커녕, 우려 섞인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허울뿐인 승격이라는 우려에서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정부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국립트라우마센터 제주분원의 올해 예산을 17억원으로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6억3000만원만 편성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행정안전위원회가 10억8000만원으로 늘렸으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기재부가 증액에 동의하지 않아 6억3000만원이 확정됐다. 지방자치단체인 제주도가 마찬가지로 6억3000만원을 부담하라는 것. 국립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된 이유다.

위와 같은 문제 제기에 행안부는 “운영 비용은 법 규정, 유사 사례 등을 고려해 지방비 50% 분담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8조 ‘국가와 지자체는 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출연 또는 보조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안산 온마음센터(세월호)도 운영비의 50%는 지방비로 충당하고 있음을 내세웠다.

더 나아가 행안부는 “용역 보고서의 추정 등록자 수와 시범사업의 실제 등록자 수 사이에 큰 편차가 있어 시범사업에 준해 운영비를 편성했다”며 “향후 운영 성과에 따라 인력과 예산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립트라우마센터 제주분원의 치유대상자는 총 1만8920명으로 ▲4.3 유족(1만5566명) ▲희생자 며느리 (3251명) ▲생존희생자 후유장애인 (84명) ▲수형인 19명 순이다. 또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 주민(2170명)까지 포함하면 대상자는 더욱 늘게 된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등록자는 매년 크게 늘었다. ▲2020년 475명으로 시작해 ▲2021년 783명 ▲2022년 1158명 ▲2023년 1472명으로 3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이용 건수 또한 연간 1만6000여건을 상회하고 있다. 2020년 6개월 남짓한 운영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용 건수가 1만699건에 달했다. 이후 ▲2021년 1만7086건 ▲2022년 1만6539건 ▲2023년 1만7670건 등을 기록했다.

협소한 시설과 인력 부족 문제로 연간 대기 인원이 600명을 웃돌 정도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행안부 역시 용역 보고서상 추정 등록자 수가 부풀려진 면이 있음을 인정했듯이, 단순히 몇명이 트라우마센터를 이용했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치유대상자 대비 등록자 수가 떨어지는 점, 연간 대기 인원 등을 고루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김성한 4.3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은 2023년 성과보고서를 통해 “트라우마센터의 등록자와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치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며 “이에 센터와의 접근성이 낮은 지역은 직접 찾아가는 치유 서비스를 확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보다 적극적인 프로그램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충이 불가피하다.

제주4.3트라우마센터 치유 프로그램 모습.

당장 제주도로서는 난처한 입장이다. 트라우마치유센터법에 앞서 지방자치법은 국가의 부담을 지자체에 넘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경정예산에 운영비를 편성해 확보할 계획이다. 정확한 규모를 밝히진 않았으나, 정부가 요구한 50%보다 줄어든 30% 수준으로 예상된다.

제주도 4.3지원과 관계자는 “시범 운영과 마찬가지로 50%를 지방비로 분담하는 것은 부담이 돼 본원이 들어설 광주와 분담률을 낮추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며 “본격적으로 국립트라우마센터가 운영되는 첫해인 만큼, 올해 분담률이 차후에도 이어질 수 있어 분담률을 최소화해 추경에 편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범 운영기간 4.3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의 치유 프로그램을 도맡아온 기존 전문 인력들의 고용 승계 문제도 논란이다. 행안부는 국립트라우마센터 출범 시 신규 임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한규 국회의원(제주시을)은 “국립기관으로 승격되는 만큼 국가에서 운영비를 전액 부담하는 것이 이치”라면서도 “현실적으로 당장 전액 국비 운영이 어렵다면 단계적으로 지자체의 부담을 줄여나가 최종적으로 100% 국비 운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주도가 해당 예산으로 관련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용 승계와 관련해서는 “법적인 의무가 없더라도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서 채용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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