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충과의 전쟁] ① 현실과 동떨어진 예찰...고사목 원인조사는 ‘낙제점’

2년 사이 급작스럽게 증가한 소나무 재선충병 감염목으로 제주 산림 전체가 신음하고 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쏟아 부으며 3년째 방제 작업에 목을 매고 있지만 1차 방제는 사실상 실패했다. 일부 사업장은 비위 행위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제주도는 또다시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차 방제를 벌이고 있다. 무차별적인 고사목 제거로 환경 파괴와 생태계 붕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제주도는 뒤늦게 지역에 맞는 방제 매뉴얼 마련에 착수했다. [제주의소리]가 세 번째 소나무 재선충병 기획기사로 제주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제주형 방제 매뉴얼’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빗나간 예측’ 무차별 일방적 방제 화 키워
2. ‘부실한 1차 방제’ 수백억 혈세 곳곳서 누수
3. 친환경 제주형 방제 매뉴얼 서둘러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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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는 2013년부터 2014년 8월까지 고사목 54만5000그루를 제거하는데 447억원을 쏟아부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시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차 방제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제주시 애월읍의 한 야산. 중장비 뒤로 잘려 나간 수많은 소나무 밑둥이 보인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시 애월읍의 한 야산. 경사진 산기슭을 올라서자 잘려 나간 소나무들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중장비가 오간 자국이 선명하고 길 주변에는 나무 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좀 더 안으로 들어서자 책상 크기만 한 굴착기 장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뒤로 무참히 잘려 나간 소나무 밑둥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제주도가 2013년 9월2일 ‘소나무 재선충병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1년 반이 지났다. 우근민 전 지사는 지난해 5월8일 1차 방제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발표했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우 전 지사의 발표 5개월만에 제주도는 27만8000그루의 고사목을 제거한다며 다시 2차 방제를 시작했다. 이마저 예측이 빗나가면서 제거량은 38만4000그루로 10만 그루나 늘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 재선충이 소나무와 해송, 잣나무 내에 머무르며 단기간에 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병이다. 재선충은 길이 1mm 내외의 실 같은 선충이다.

재선충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 몸에 기생을 하다 성충이 건강한 소나무의 수피(껍질 안쪽)를 갉아 먹을 때 소나무에 침입해 나무를 말라 죽게 한다.

솔수염하늘소는 죽어가는 나무에 산란하고 알은 소나무 안에서 겨울을 보낸 뒤 봄에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된다. 이 과정에서 소나무 수피에 있던 재선충이 성충 몸 속에 침입한다.

성충이 고사목에서 탈출해 다른 건강한 소나무로 이동하기 전에 고사목을 잘라내야 한다. 제주도가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대대적인 고사목 제거 작업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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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재선충이 소나무를 죽이는 과정. <출처-국립산림과학원_산림과학속보 제14-22호 'NEW소나무재선충병의 생태와 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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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재선충병의 매개충 전국 분포도. 제주도는 솔수염하늘소가 매개충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국립산림과학원_산림과학속보 제14-22호 'NEW소나무재선충병의 생태와 방제>
문제는 고사목 제거와 예찰 방식이다. 재선충병을 전문적으로 연구중인 이종우(43) 박사는 제주도가 소나무 고사 원인에 관한 정확한 조사도 없이 방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이 박사가 제주시내 소나무 고사목을 직접 조사한 결과, 전체 샘플 중 40%만이 재선충병 감염목이었다. 나머지 40%는 바구미류, 20%는 가뭄 등 환경적 요인이었다.

이 박사는 “소나무는 재선충병이 아닌 바구미류와 솔껍질깍지벌레 등의 영향으로 고사될 수도 있다”며 “제주도는 고사 원인에 대한 진단도 없이 나무만 자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해 조사에서는 재선충병 비율이 80%로 늘었다. 이는 무분별한 고사목 제거로 바구미류에 의한 건강한 소나무 공격을 촉진해 재선충병 확산에 기여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국립산림과학원이 2014년 10월 제주시 애월읍과 조천읍 선흘리 소나무 밭 일대에서 진행한 표본검사에서도 고사목의 83.3%가 재선충병에 의한 감염인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의 신창훈 산림환경연구과장은 “바구미류의 경우 일반적으로 고사목에 터를 잡을 뿐 나무 자체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신 과장은 “외부에서 지적하는 고사목의 원인 조사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활동 시기 등에 대한 조사는 필요하다”며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에 관련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 박사는 "일반적인 바구니 서식 환경에서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다. 기후 환경 변화로 밀도가 높아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바구니도 나무를 고사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고사목 예찰 결과도 논란거리다. 제주도는 고사목이 창궐한 2013년 9월초 재선충병 감염목을 10만 그루로 예측했다.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고사목을 20만 그루로 높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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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애월읍의 한 야산. 고사목을 제거하기 위한 길을 만들기 위해 잘려나간 나무들이 널브러져 있다.<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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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한림읍의 한 야산. 소형 굴착기가 나무를 잘라 길을 만들고 제거된 고사목을 정리하고 있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그해 10월에는 산림분야 전문가 집단인 사단법인 한국산림기술사협회에 고사목 발생조사를 의뢰했다. 당시 한국산림기술사협회는 고사목을 22만7000여 그루로 추정했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제주도는 보강조사가 이뤄졌다며 고사목을 30만 그루로 수정했다. 다시 한 달이 지난 2014년 1월 제주도는 고사목을 43만 그루로 재수정 해야만 했다.

월별 고사율 추계가 맞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제주도는 한국산림기술사협회에 의뢰해 2013년 10월 당시 제주지역 고사목 규모와 이듬해 4월까지 예상 발생량을 조사했다.

조사 시점의 데이터는 비교적 정확했지만 추가 고사목 예측량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국산림기술사협회가 적용한 월별 감염 추계 비율이 제주의 현실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추가 감염목에 대해서는 산림청의 고사율을 적용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산림기술사협회도 이 고사율을 적용해 감염목 규모를 예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사목 예측량의 오류를 알면서도 수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용역을 의뢰했다는 얘기다. 제주도가 1, 2차 소나무 재선충병 예찰을 등에 투입한 용역비만 1억원 가량이다.

제주도는 지난해 10월 2차 방제를 위한 고사목 27만8000그루로 예측했으나 지난달 38만4000그루로 수정했다. 방제가 끝나는 4월이면 예측량이 더 늘수도 있다.

정상배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원인과 진단에 대한 규명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제주도가 문제해결의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먼저 되새겨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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