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충과 전쟁] ② 예찰오류-방제부실 ‘악순환’...방제품질 높여야

2년 사이 급작스럽게 증가한 소나무 재선충병 감염목으로 제주 산림 전체가 신음하고 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쏟아 부으며 3년째 방제 작업에 목을 매고 있지만 1차 방제는 사실상 실패했다. 일부 사업장은 비위 행위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제주도는 또다시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차 방제를 벌이고 있다. 무차별적인 고사목 제거로 환경 파괴와 생태계 붕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제주도는 뒤늦게 지역에 맞는 방제 매뉴얼 마련에 착수했다. [제주의소리]가 세 번째 소나무 재선충병 기획기사로 제주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제주형 방제 매뉴얼’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빗나간 예측’ 무차별 일방적 방제 화 키워
2. ‘부실한 1차 방제’ 수백억 혈세 곳곳서 누수
3. 친환경 제주형 방제 매뉴얼 서둘러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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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애월읍의 한 소나무 밭. 고사목 제거 후 훈증을 위한 방수포가 찢겨진채 널브러져 있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시 애월읍 일주도로 주변 소나무 밭에 들어서자 잘린 고사목을 모아 놓은 초록색 방수포가 여럿 눈에 들어왔다. 곳곳이 찢겨 있고 고사목 가지들이 널브러진 채 방치돼 있었다.

소나무 밑둥은 지상에서 50cm가 넘었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껍질은 그대로였다. 바로 옆 잘려나간 소나무에는 작업 표식지가 2개나 붙여 있었다. 방제 매뉴얼은 지켜지지 않았다.

제주도가 2013년 9월부터 1년간 잘라낸 소나무만 54만 그루에 달한다. 투입된 예산은 447억원, 연인원 11만명을 동원했다. 10년간 소나무 방제에 쏟아 부은 돈만 833억원이다.

1차 방제로 고사목 비율이 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으나 올해 예상 감염목 발생수는 이미 38만그루를 넘어섰다. 4월 조사에서는 지난해 수준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선충과의 전쟁’을 선포가 제주도가 완패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주지역 1차 방제는 소나무재선충병이 창궐한 2013년 9월부터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육지부 산림조합 인력과 해병대, 자생단체까지 총 동원돼 방제에 나섰지만 방제 품질은 기대 이하였다. 비전문가들의 현장 투입으로 방제 수준은 떨어졌고 관리감독은 부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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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애월읍의 한 소나무 밭. 벌채된 소나무에 작업표식지가 2개나 붙여져 있다. 방제에 참여한 업체가 작업량을 부풀리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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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애월읍의 한 소나무 밭. 방재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채 50cm 이상의 높이로 나무 밑둥을 잘랐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소나무 방제 비리의혹을 수사중인 경찰은 5개 지구 고사목 제거작업을 담당한 H산림개발 관련자 2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공무원들의 관리감독 부실 여부도 조사중이다.

H업체는 2013년 10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제주시 연동과 도평 등에서 방제활동을 하며 작업량과 인건비 등을 조작해 최대 3억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H업체가 애초 제주도와 맺은 방제 물량은 1만4786그루에 사업비만 10억7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전수조사 결과 계약물량 중 3181그루에 대한 고사목 제거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정상배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1차 방제 부실로 재선충병 확산 방지를 위한 중요 시간을 놓쳤다”며 “벌채와 나무주사 등 육상방제에 대한 문제가 심각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1차 방제가 끝난 애월지역만 둘러봐도 수많은 고사목이 눈에 들어온다”며 “다음달까지 방제가 마무리될지 의문이다. 실패한 1차 방제의 문제점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선충은 고사목에 솔수염하늘소가 산란 하면 성충 몸속에 들어가 공생한다. 봄에 우화한 매개충은 새순을 먹기 위해 건강한 소나무로 이동하고 이때 재선충이 나무에 침입한다.

소나무 재선충병을 없애기 위해서는 매개충이 산란하고 우화 직전인 ‘가을부터 봄까지’ 고사목을 잘라내야 한다. 봄을 앞둔 지금은 고사목 제거를 위한 막바지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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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재선충병 생활사와 방제시기 <출처-국립산림과학원_산림과학속보 제14-22호 'NEW소나무재선충병의 생태와 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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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오라동의 한 야산. 1차 방제 지역과 달리 비교적 매뉴얼을 지키며 벌채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방제의 핵심은 품질이다. 고사목은 1~2㎥ 크기로 잘라 쌓고 약품 처리를 한 뒤 방수포를 씌우는 훈증절차를 거친다. 직경 2cm 이상의 잔가지도 밀봉해 훈증하는 것이 원칙이다.

고사목 이동이 원활할 경우 공터에 태우거나 톱밥 제조기를 통해 길이 1.5cm 이하의 크기로 분쇄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목질내부의 매개충을 죽여 우화 자체를 막을 수 있다.

1차 방제에서는 이 같은 기본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현장 곳곳에서 산림청의 방제 매뉴얼은 무시됐고 방제 품질 저하는 재선충병 확산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종우(43) 박사는 “1차 방제 부실은 2차 방제 예찰의 오류로 연결된다”며 “예찰이 잘못되면 관련 예산과 인력투입에도 문제가 생겨 방제 부실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실제 제주도는 2차 방제 예찰을 통해 올해 고사목을 27만8000그루로 예상했으나 지난달 38만4000그루로 수정했다. 작업이 끝나는 4월에는 50만 그루에 육박할 수도 있다.

이 박사는 “고사목이 많아지면 예찰을 토대로 배정된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결국 예찰이 독이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제주도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김창조 제주도 산림휴양정책과장은 “2차 방제는 품질향상에 주력하고 작업 인력도 계속 늘리고 있다”며 “관리 가능한 수준까지 고사목을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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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애월읍의 한 소나무 밭. 고사목 제거후 훈증을 위한 방수포가 찢겨진채 널브러져 있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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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애월읍의 한 소나무 밭. 고사목 제거작업이 끝났지만 다시 고사목이 발생했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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