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⑧ / 숱한 매각 위기 버틴 남원 신례리공동목장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불과 8년 전인 2013년, 조합 총회를 거쳐 78%에 달하는 찬성률로 마을 공동목장 용지 매각을 의결했던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공동목장 조합. 

조합은 목축 방식의 변화로 공동목장에서 마소를 키우는 조합원도 거의 없는 데다 목장 운영도 힘든 까닭에 매각을 결정했다.

매각을 결정하면서 조합원들은 목장용지 전체를 일괄 매수할 의사가 있고 신례리 성격에 맞는 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단체를 원했다.

하지만 조합을 찾아온 개발 업자들은 구체적인 계획을 내세우지 못한 채 땅을 매입하겠다는 의지만 피력하기에 급급했고 그럴수록 조합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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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신례리마을공동목장을 찾은 날은 새벽부터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다행히 탐방 시간에는 비가 그쳤다. 궂은 날씨에도 목장을 둘러보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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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김창혁 신례리공동목장조합장을 따라 목장을 둘러보며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제주의소리

거대 중국 자본력을 등에 업고 달려든 개발 업자에게 목장을 매각하게 된다면 아름다운 이승악과 신례리 마을이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더군다나 설촌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례리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 들어올 경우 마을이 망가져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번져나갔다.

중간중간 교육과 종교재단 등 단체가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고, 영농단지를 만들겠다는 한 기업은 실제 매각 검토 단계까지 이뤄졌으나 행정 인허가를 받지 못해 뜻을 접기도 했다.

이에 조합은 목장용지를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접고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키로 했다. 

이 같이 숱한 매각 유혹에도 마을공동목장의 진정한 가치를 살리기 위해 버텨낸 신례리공동목장을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 팀이 지난 9일 목장 현장을 찾았다. 

이번 신례리공동목장 방문은 금당목장, 남원한남공동목장, 하원공동목장에 이은 네 번째 방문지로 목장 부지를 둘러보고 김창혁 신례리공동목장조합장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마을공동목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마을공동체의 자산이자, 제주도 특유의 목축경관을 간직한 보고(寶庫)다. 팔려나간 마을공동목장의 사유화는 즉각 난개발로 이어지고 다시는 공동체 자산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제주의 허파를 품은 중산간과 곶자왈의 상당부분이 마을공동목장에 속해있거나 맞닿아 있다. 마을공동체를 넘어서서 도민공동체가 마을공동목장 관리 유지 방안, 관련 정책수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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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례리 목장에서는 남쪽으로 멀리 서귀포 일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 팀이 방문한 9일은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맑은날이면 목장에서는 아래로 펼쳐진 서귀포 바다와 뒤로 위용을 뽐내는 한라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마주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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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부지를 둘러보고 있는 참가자들. 현재 신례리공동목장에는 170여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제주의소리

신례리공동목장은 공동목장 조합이 소유한 약 175.2헥타르(ha) 규모로 지목상 목장용지, 임야, 대지 등으로 구성된다. 목장은 일제강점기 제주도 마을공동목장조합이 설립되던 초기인 1933년에 설립인가를 받아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간 연구에 따르면 신례리공동목장은 1943년 조합원들이 개인소유 토지를 출자하고 토지가 없는 조합원은 목장에서 노동력을 제공, 경계 돌담을 쌓는 일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1979년에는 공동축사를 건축하고 신례리 마을회 명의로 소유권을 보존 등기하기도 했다. 

이어 2005년에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목장용지 약 6.6헥타르(2만여 평)를 제주생물종다양성연구소 부지로 기부채납했다. 이에 따라 연구소 운영위원 1인 추천권, 비전문직 직원 채용 시 신례리 출신자 우선 채용 등 혜택을 얻었다.

2010년에는 베스트 특화마을 육성사업을 추진하며 목장용지를 대지로 변경해 아토피 화장품 전시 판매장을 건립하는 등 목장 활용책을 내놨다. 

제주연구원 ‘제주지역 마을공동목장 관리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신례리공동목장조합 조합원 수는 269명으로 신례 1리와 신례 2리 출신으로 구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조합원들은 그동안 많은 매각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목장용지를 매각하지 않았으며 최근에는 제주연구원과 공동목장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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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창혁 조합장. 그는 숱한 매각 위기 이후 목장을 지켜내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고민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살려 꽃과 식물이 물결치는 '초록바다'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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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가자는 목장이 처한 현실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조합원을 설득할 때의 어려움과 각종 규제가 풀렸을 때 들이닥칠 자본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김창혁 신례리공동목장조합장은 “현재 목장은 조합원 2명이 각각 130여 마리, 40여 마리를 방목하며 키우고 있다”며 “이처럼 소를 방목하는 사람이 줄자 땅을 팔아 이득을 얻자는 의견이 대두됐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매각 의사를 나타낸 곳은 대부분 어떻게 개발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했고 결국 우리 조합은 자체 수익사업을 펼치기로 마음먹게 됐다”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귀한 자연 자원을 우리 역시 후손에게 넘겨줘야 하지 않느냐는 책임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조합장은 지난 2013년 통과된 이후 아직도 유효한 매각의 건을 다가오는 조합 총회 때 완전히 철회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름다운 목축경관을 보존하고 자연 친화적인 신례리에 어울리는 수익사업을 창출하겠다는 것.

신례리공동목장에서는 신례리가 왕벚나무 자생지인 만큼 앞선 2010년 베스트 특화마을 육성사업 당시 한라산의 높이인 1950m에 맞게 왕벚나무 1950그루를 심어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더불어 목장 아래로 서귀포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으며 뒤로는 우뚝 선 한라산을 바라볼 수 있다. 목장용지가 포함된 인근 곶자왈과 신례천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최근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촬영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조합장은 “목장과 어울리는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물려받은 목장도 지키고 자연도 보호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무분별하게 자라난 소나무를 솎아내고 초지에 피어난 식물을 있는 그대로 관리해 초록바다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록바다라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피어난 꽃과 식물들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수준으로 관리한다면 바람 불 때 살랑이는 초록 물결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자본의 힘을 들이지 않고 조합 자체 힘으로 해나가려 한다. 몇 년이 걸리더라고 해낼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그는 포부를 밝히는 과정에서 행정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목장 보전을 위해 자체적인 수익사업을 하려 해도 각종 제약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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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례리공동목장에 지어진 축사 출입문. 조합원 269명 가운데 소를 키우고 있는 조합원이 2명에 불과한 상태다. 방목의 경우 축산 방식의 변화에 따라 많이 사라졌으나 최근 들어 동물복지가 떠오르면서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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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내부에 가득 쌓인 볏단. ⓒ제주의소리

걸림돌 때문에 자구책조차 마련할 수 없게 된다면 매각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목장을 개발 금지 구역으로 묶었다면 세면을 감면해주거나 환경 직불금을 통해 개인 재산을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조합장은 “개인 재산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수 보전 관리 구역, 개발 금지 구역 등 제약을 걸어 아무것도 못 하는 데다 세금도 내야 하니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환경을 지킬 목적이라면 제대로 보전할 수 있게 지원해주거나 세금이라도 받지 말아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한 도민 참가자는 “여러 가지 제한에 묶인 목장용지가 자유로워진다면 이를 개발하고자 하는 자본에 잠식될 위협도 있다”며 “결국 꾸준한 자본의 달콤한 유혹에 조합원들이 매혹된다면 결국 제약이 해제됐지만, 땅은 매각되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자체적으로 개발할 때도 어설프게 해선 안 된다. 만약 자본의 힘을 빌려 경관을 조성하게 되면 결국 투입한 비용을 뽑아내려는 자본의 힘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우려들을 잘 생각하고 자연 가치를 보전하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그램은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주 곳곳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mapplerk3’를 내려받아 회원 가입한 뒤 커뮤니티 검색에서 ‘Save Jeju’를 검색, 가입하면 된다.

이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곳곳의 가치들을 영상과 글, 사진 등을 통해 기록하면 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홈페이지(mapplerone.net/savejeju)에서 공유된 가치들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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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례리공동목장 초지 전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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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조합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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