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재심 절차 상세한 심리 여부에 따라 형사보상 절차 반비례
법조계 "형사보상 편의성보다 재심에 속도내는 게 더 중요" 우세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4.3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에 속도가 붙은 가운데, 형사보상이 유족들 사이에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형사보상 절차 편의성만 좇으면 명예회복의 출발점인 재심 절차가 되레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제주4.3특별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4.3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절차인 재심의 편의성이 높아졌다. 이전까지는 4.3 피해자라 하더라도 형사소송법상 재심 절차를 밟아야 돼 심문기일 등 절차가 진행됐다.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4.3 희생자를 위한 ‘특별재심’이 도입됐고,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군법회의 피해자 2530명을 위한 ‘직권재심’도 도입됐다. 

직권재심은 검사의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다는 의미로, 이전까지 직접 피해사실을 확인해 변호사에게 의뢰했던 시간과 비용 등이 크게 줄었다. 

특별재심은 4.3 희생자를 위한다.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중앙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된 4.3 피해자에게는 형사소송법이나 군사법원법에 불구하고 재심이 가능하다. 

심문기일 등에 출석해 피해사실을 밝혀야 했던 이전과 달리 특별재심이 도입되면서 서면심리 등 절차를 통해 심문기일 없이 재심 개시 결정이 나고 공판기일 당일 무죄 선고까지 이뤄져 속도가 붙었다. 

무죄 판결을 통해 명예가 회복된 4.3 피해자들이 크게 늘면서 덩달아 추후 절차라고 할 수 있는 형사보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형사보상은 죄없는 선량한 국민이 누명을 써 옥살이하는 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손해를 보상해주는 제도로,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에게 손해배상도 아닌 형사보상은 매우 생소하다. 

평생 죄인으로 살다 재심을 통해 명예가 회복된 제주4.3 피해자들이 곧 형사보상 대상자로 볼 수 있다. 

형사보상금은 억울하게 옥살이한 기간을 토대로 최저임금 등을 반영해 추산되는데, 불법 구금 기간 등 자료가 많지 않아 4.3 피해자들이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4.3 관련 토론회에서 한 법조인은 “재심 판결문에 구체적인 4.3 피해사실을 기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률적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유족들을 위해 판결문에 불법 구금 기간 등을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 추후 절차인 형사보상에서 4.3 유족들의 편의성이 높아진다며, 법원과 검찰, 변호인들이 진실을 마주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4.3 재심 전담 재판부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제18차 직권재심에서 제주지방법원 형사4부는 형사보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불쾌했다. 재심을 기다리는 유족이 많아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 유족들이 상세한 구금기간 기재를 원하는지 알고 싶다. 다만, 재심 절차가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삼모사’다. 재심 절차에서 상세한 심리가 이뤄지면 형사보상 등 절차가 빨라질 것이고, 세세한 심리 없이 재심이 진행되면 형사보상 절차가 다소 길어질 수 있다”며 유족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4.3특별법 전면 개정 입법 취지를 감안하면 재심에 속도를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또 오랜 기간 4.3에 관심을 가져온 법조인들은 불법 구금 기간을 추산하는 것은 더이상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법조인은 “자료가 많지 않은 제주4.3 특성상 피해자들의 구금기간이 정확히 기재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처음에는 불법 구금기간 추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4.3 유족에게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형사보상을 해주는 선례·판례가 생겼다”고 운을 뗐다. 

이어 “4.3 때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사람의 경우 대부분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총살당했거나 탈옥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각종 기록 중 구금 시작일은 가장 앞선 날로, 종료일은 각 형무소별 마지막 총살 등이 이뤄진 날로 계산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법조인은 “판결문에 불법 구금기간 등을 상세히 기재하려면 그에 따른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현재 직권재심이 2주마다 진행되는데, 상세한 확인 절차가 도입되면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에 요청해 법원 명의로 관련 문서를 보다 쉽게 얻을 수는 있겠지만, 엄격히 따지면 재심에서 피해자들의 불법구금 사실과 기간 등을 확인하는 것은 변호인의 영역”이라며 “재심 이후 절차의 편의성만 좇으면 정작 시작점인 재심 자체가 지연될 수 있어 유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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