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내국인진료제한 부당 판결로 1000억원대 손해배상 외 공공 의료체계 갈등
“모든 영리병원 내국인 진료 허용될 상황” 제주특별법 개정 등 근본적 해법 찾아야

제주에 추진된 국내 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내국인 진료 제한(선행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후폭풍이 예고됐다.

제주도는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개설허가 취소(후행처분)’ 소송에 이어 녹지 측에 또 한차례 패소하면서 국내 의료체계에 큰 논란이 일었던 영리병원 갈등이 재연될지 우려도 나온다.   

5일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의 소’에 대해 허가 조건을 취소해야 한다며 녹지 측의 손을 들어 줬다. 

2019년 2월14일 녹지측의 소송 제기 이후 3년여만의 1심 판단이다. 

소송 과정에서 녹지 측은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위헌·위법이며, 애초 내국인 진료 제한을 염두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했다고 주장해 왔다.

제주도는 사상 초유의 영리병원은 제주특별법에 따라 제주도지사의 재량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또 녹지 측이 이미 병원 건물 등을 매각했기에 실익이 없어 소를 각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따른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는 제주특별법에 따라 의료기관 개설 주체 등에 대한 특례를 정한 것 외에는 의료법을 준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내국인 진료 제한은 위법이라는 취지다. 

항소·상고심이 남았지만, 이번 판결에 따른 후폭풍도 거셀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제주도의 승소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녹지병원 관련 소송은 제주도의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부 허가(선행처분)’와 ‘개설허가 취소(후행처분)’까지 2개의 행정행위로 연결됐다. 

2018년 12월5일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녹지병원 개설을 허가(선행처분)한 바 있다. 

녹지 측은 내국인 진료 제한은 진료 거부에 따른 의료법 위반 등 논란이 있다며 병원 개설을 미루며, 제주지법에 선행처분에 대한 소를 제기했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에 따르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다. 

제주도는 녹지병원이 병원 개설을 미루자 2019년 4월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전격 취소했다. 

의료법 제64조(개설 허가 취소 등)에 따르면 허가 이후 3개월 동안 ‘정당한 사유’ 없이 병원을 개설하지 않으면 관련 지자체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제주도는 녹지 측이 ‘정당한 사유’ 없이 병원을 개설하지 않았다는 판단(후행처분)이다. 

2019년 5월 녹지 측은 개설허가 취소처분이 부당하다며 제주도의 후행처분에 대한 소송까지 추가로 제기했다. 

선행처분과 후행처분을 심리하던 재판부는 후행처분에 대한 선고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선행처분 판단을 미뤄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후행처분에 대한 1심 재판부는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결과가 뒤집힌 뒤 올해 1월 대법원이 후행처분에 대한 제주도의 패소를 확정했다. 녹지 측이 병원을 개설하지 못할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판단으로, 정당한 사유에는 내국인 진료 제한이 포함됐다. 

이미 후행처분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녹지 측의 손을 들어줘 선행처분인 이번 소송에서도 재판부가 녹지 측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됐고, 실제 1심에서 녹지 측이 승소했다.  

2018년 12월 당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병원에 대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원 지사는 “국내 의료체계에 주는 영향을 막기 위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처분을 내렸다. 신청을 단순히 불허했을 경우 1000억원대에 이르는 손해배상 책임을 제주도민의 세금으로 물어야 하기에 이를 막기 위해 조건부 허가를 내렸다”며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12월 당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병원에 대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원 지사는 “국내 의료체계에 주는 영향을 막기 위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처분을 내렸다. 신청을 단순히 불허했을 경우 1000억원대에 이르는 손해배상 책임을 제주도민의 세금으로 물어야 하기에 이를 막기 위해 조건부 허가를 내렸다”며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가 선행처분에서도 최종 패소할 경우 녹지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이 우려된다.  

후행처분에 대한 1심에서 승소하자 원희룡 전 지사는 “제주도는 국내 의료체계에 주는 영향을 막기 위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처분을 내렸다. 신청을 단순히 불허했을 경우 1000억원대에 이르는 손해배상 책임을 제주도민의 세금으로 물어야 했기에 이를 막기 위해 조건부 허가를 내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1000억원대에 이르는 손해배상 말고도 우리나라 공공 의료체계 붕괴가 더 큰 우려다. 

의료법 제33조에 따르면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는 ‘공공재’ 개념이다. 병원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병원 직원 임금이나 병원 관련 부대사업(장례식장) 등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병원이 아닌 곳에 투자할 수 없다. 

하지만, 녹지병원과 같은 영리병원은 주식회사처럼 일반 투자자의 자본으로 설립된 병원이다. 투자 지분에 따라 병원 수익금을 투자자가 가는 시스템인데, 의사가 아니더라도 병원을 설립해 이익을 취할 수 있어 ‘영리’병원으로 불린다.  

녹지병원은 제주특별법에 따라 추진됐다. 

제주특별법 제307조(의료기관 개설 등에 관한 특례)에 ‘의료법’ 제33조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제주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제주에 의료기관(병원·치과병원·요양병원·요양병원·종합병원)을 개설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녹지병원에 대한 내국인 진료 제한이 부당하다는 확정 판결이 나면 추후 추진되는 다른 영리병원에 대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지 못하는 등 영리병원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법정에 참석해 제주도의 패소를 직접 확인한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 운동본부 오상원 정책기획국장은 이날 취재진에게 “녹지 측이 제기한 소를 각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제주도가 패소했다. 모든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가 허용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영리병원 개설의 단서가 된 제주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등 영리병원을 막기 위한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달중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소집할 예정이며, 위원회에서 녹지병원에 대한 최종 허가 취소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녹지병원의 건물과 토지 등이 다른 법인에 넘어가 외국인 의료기관으로서 지위를 상실했다는 판단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제주도 측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녹지병원은 서귀포시 동홍동과 토평동 153만9013㎡ 부지에 병원과 휴양콘도, 리조트를 건설하는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영리병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제주도는 수개월간 공론조사를 진행했고, ‘불허’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원 전 지사는 이같은 불허 의견에도 조건부 허가했고, 이와 관련 “외교 문제와 외국 자본에 대한 행정 신뢰도를 감안했다.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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