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산불경보 ‘경계’ 격상 3일 뒤 ‘행사 일부 취소’
이미 법적 불가 상황서 ‘늑장 대응’ 지적 따라

지난 6일 산불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 발령된 이후 법적으로 불놓기를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시가 3일 뒤인 9일 취소를 결정하면서 늑장 대응이 아니냐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난 6일 산불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 발령된 이후 법적으로 불놓기를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시가 3일 뒤인 9일 취소를 결정하면서 늑장 대응이 아니냐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제주의소리

‘불놓기’ 행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음에도 제주시가 뒤늦은 결정을 내리면서 이미 진행 중인 행사가 일부 취소되는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강병삼 제주시장은 10일 오전 9시 30분 기자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새별오름 일대에서 열리는 제주들불축제 일정 중 ‘오름 불놓기’ 등 불 관련 행사를 모두 취소한다고 밝혔다.

제주시는 9일 오후 7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들불 희망불씨 모심 퍼포먼스 △광장 소원달집 태우기 △제주화산쇼 △달집점화 △오름불놓기 등 불 관련 행사 취소를 결정했다.

산림청이 지난 6일부로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4월 30일까지 산불특별대책기간으로 정함에 따른 결정이다. 산불경보 ‘경계’ 단계는 전국 산림위험지수가 66이상인 지역이 70% 이상일 때 발령된다.

이처럼 산불경보 ‘경계’ 단계가 발령될 경우 제주들불축제의 핵심 행사인 ‘오름불놓기’ 등 행사는 법적으로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산림보호법 시행령 ‘산불경보별 조치기준’에 따르면 ‘경계’ 단계일 경우 산림 및 산림인접지역에서의 불놓기 허가가 중지된다. 다시 말해 지난 6일부터 제주들불축제의 ‘불놓기’ 행사는 이미 법적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주지역의 경우 산불위험지수가 ‘관심’ 단계에 불과해 산불 위험이 타 지자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산불경보는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탓에 제주시로서도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제주시는 산불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된 지 3일 뒤인 9일 저녁에서야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행사가 진행 중인 들불축제의 핵심 행사 취소를 결정했다. 

제주시는 결정이 늦어진 이유로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수많은 시민께서 열망을 갖고 준비해온 탓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는 등 이유를 댔다. 

실제로 제주시는 유연한 해석이 가능한지 산림청에 유선상 질의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안 된다”였다. 시행령에 나타나듯 ‘산림 및 산림인접지역에서의 불놓기 허가 중지’가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산불위험지수가 낮았던 제주시로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인 탓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었다고는 보기 힘든 대목이다. 더군다나 강병삼 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위법하다는 것을 알면서는 할 수 없기에 취소했다”고 밝혔다.

결국, 법적으로 이미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행사를 정상적으로 치러보겠다는 열망이 늑장 대응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2023 제주들불축제 행사가 진행되는 제주시 새별오름 현장. ⓒ제주의소리
2023 제주들불축제 행사가 진행되는 제주시 새별오름 현장. ⓒ제주의소리
9일 제주시청 주차장에서 진행된 2023 들불축제 서막연희. 강병삼 시장이 삼성혈부터 봉송된 불씨를 건네받고 있다. 사진=제주시청.
9일 제주시청 주차장에서 진행된 2023 들불축제 서막연희. 강병삼 시장이 삼성혈부터 봉송된 불씨를 건네받고 있다. 사진=제주시청.

심지어 긴급대책회의가 열린 9일 오후에는 삼성혈에서 봉행된 들불 불씨 채화제례와 불씨 봉송 퍼레이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열띤 홍보로 오름불놓기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부풀려놓고 정작 취소 사실을 전날 발표하면서 방문 계획을 세우고 있던 도민과 관광객의 허탈함을 더 키웠다는 지적도 따랐다.

제주들불축제가 해를 건너 취소되는 등 정상적으로 개최할 수 없게 되자 축제를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우려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제주들불축제는 여러 이유로 몇 차례 취소된 전력이 있다. 2011년에는 전국적인 구제역 파동 여파로 축제를 열지 못했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취소됐다. 

2021년에는 사상 첫 온라인 행사로 제한된 인원만 현장에 초대하고 오름불놓기 등은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그러나 2022년에는 강원·울진지역 대형 산불로 또다시 취소됐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행사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반면 관광객 유치로 인한 경제 활성화나 지역 예술인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예술계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관련해 강병삼 제주시장은 “제주시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 시민 의견을 수렴하면서 결정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축제가 끝난 뒤 평가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듣겠다”고 말했다.

가축 방목을 위해 마을별로 불을 놓았던 목축문화를 재현한 문화관광 축제인 제주들불축제에 ‘불’이 빠진 상황에서 제주시가 행사를 어떻게 운영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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